[안경환의 법과 문화] 박근혜 정부와 국무총리
2014년 05월 30일(금) 00:00 가가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가 탄생하려면 좀 더 시일이 걸릴 듯하다. 안대희 지명자가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자진 사퇴했기 때문이다. 당초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더니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는 물러나는 정홍원 총리나 마찬가지로 검사 출신이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 캠프의 핵심 참모였다.
그런 그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함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소신으로 대통령을 ‘보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의 지명 소식을 듣고 적어도 몇 시간은 막연한 기대에 부푼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의 총리 취임에 이어 대통령이 담화에서 촉구한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관피아의 적폐’가 척결될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기대도 있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공무원이 100만 원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 직접적인 직무의 대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에 보편적인 관념이 되어 있는 내용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마땅하고 합당한 일이다.
그동안 언론의 후광을 통해 국민의 눈에 비친 안 후보자의 이미지는 강직한 소신과 청렴의 상징이었다. 권력에 위축되지 않고 수사관의 소임을 다해 ‘국민검사’의 애칭을 얻었던 막연한 추억 때문이었다. 그 막연한 추억이 정식 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이미 반쯤 퇴색되었다.
변호사 6개월 만에 16억 원 수임료는 그와 같은 거물 법조인에게는 놀라운 액수가 아닐지 몰라도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는 크게 어긋난다. 그가 혐의를 받고 있는 ‘전관예우’는 위법은 아니더라도 국민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세무조사 감독위원장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기업 세금소송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는 이해관계 있는 사건에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김영란법’의 정신과 내용에 어긋날 수 있다.
또한 후보자의 지위에서 당당하지 못한, 궁색한 변명으로 위기를 넘겨서는 새 총리의 위용과 동력이 크게 손상된다. 정치적 색채가 강하게 더해지는 국회청문회를 거치면서 그의 위상이 얼마나 더 추락할지 걱정이었다. 어쨌든 그의 자진 사퇴로 대통령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보다 근본적인 우려는 과연 누가 명실공히 국무총리다운 총리의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우리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 등 행정부를 ‘통할’할 권한을 준다. 물론 ‘대통령을 보좌하여’ 라는 단서 아래다. 그러나 그동안 실제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5년 임기 동안 적어도 서너 명이 그 자리를 스쳐갔다. 총리에게 헌법적 지위와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책임총리제’의 공약은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허황한 선거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없는 총리는 일회용 소모품에 불과하다.
근래 어느 원로 언론인의 표현대로 대한민국 총리의 본질은 ‘물레방아’다. 스스로 힘으로는 돌지 못하고 대통령이 공급해 주는 물만큼만 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자리, 그게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실체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정부조직의 구상을 추가로 밝혔다. 교육부총리, 경제부총리 등 두 부총리와 청와대 안보실장을 더하여 ‘4륜 구동형 책임총리제’라고 명명했다.
총리실에 신설될 ‘국가안전처’의 권한과 역할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들이 총리를 보좌할지, 아니면 대통령을 등에 업고 견제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관건은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자라는 빌미로 절대 권력자의 지위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그런 인상을 풍겼다. 국민은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지, 제왕을 추대한 게 아니다.
백만 번 옳은 이야기지만 특정인을 조속히 체포하라, 엄벌에 처하라, 외국 언론의 지적대로 듣기에 따라서는 구체적인 사법절차에까지 간섭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이 친히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국정스타일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쥐락펴락하던 반세기 전의 그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딸 대통령의 권력구도에는 김기춘 실장으로 상징되는 ‘유신의 추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제 대통령이 달라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총리도 살고, 나라도 살고, ‘국가개조’라는 야심찬 과업이 약간이라도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런데 왠지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부질없는 기우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빈다. 그래야만 국민도, 나라도 ‘세월’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 위원장>
그런 그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함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소신으로 대통령을 ‘보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의 지명 소식을 듣고 적어도 몇 시간은 막연한 기대에 부푼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의 총리 취임에 이어 대통령이 담화에서 촉구한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관피아의 적폐’가 척결될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기대도 있었다.
그동안 언론의 후광을 통해 국민의 눈에 비친 안 후보자의 이미지는 강직한 소신과 청렴의 상징이었다. 권력에 위축되지 않고 수사관의 소임을 다해 ‘국민검사’의 애칭을 얻었던 막연한 추억 때문이었다. 그 막연한 추억이 정식 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이미 반쯤 퇴색되었다.
보다 근본적인 우려는 과연 누가 명실공히 국무총리다운 총리의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우리 헌법은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 등 행정부를 ‘통할’할 권한을 준다. 물론 ‘대통령을 보좌하여’ 라는 단서 아래다. 그러나 그동안 실제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5년 임기 동안 적어도 서너 명이 그 자리를 스쳐갔다. 총리에게 헌법적 지위와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책임총리제’의 공약은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허황한 선거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없는 총리는 일회용 소모품에 불과하다.
근래 어느 원로 언론인의 표현대로 대한민국 총리의 본질은 ‘물레방아’다. 스스로 힘으로는 돌지 못하고 대통령이 공급해 주는 물만큼만 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자리, 그게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실체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정부조직의 구상을 추가로 밝혔다. 교육부총리, 경제부총리 등 두 부총리와 청와대 안보실장을 더하여 ‘4륜 구동형 책임총리제’라고 명명했다.
총리실에 신설될 ‘국가안전처’의 권한과 역할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들이 총리를 보좌할지, 아니면 대통령을 등에 업고 견제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관건은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자라는 빌미로 절대 권력자의 지위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그런 인상을 풍겼다. 국민은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지, 제왕을 추대한 게 아니다.
백만 번 옳은 이야기지만 특정인을 조속히 체포하라, 엄벌에 처하라, 외국 언론의 지적대로 듣기에 따라서는 구체적인 사법절차에까지 간섭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이 친히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국정스타일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쥐락펴락하던 반세기 전의 그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딸 대통령의 권력구도에는 김기춘 실장으로 상징되는 ‘유신의 추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제 대통령이 달라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총리도 살고, 나라도 살고, ‘국가개조’라는 야심찬 과업이 약간이라도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런데 왠지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부질없는 기우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빈다. 그래야만 국민도, 나라도 ‘세월’의 아픔을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