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문학과 삶] 마음이 마음에게
2014년 05월 23일(금) 00:00 가가
이렇게 명치가 불돌을 삼킨 듯 홧홧한 것을 보면 아마도 마음은 가슴에 있는 게다. 이토록 머리가 무거운 것을 보면 어쩌면 마음은 머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리고 미열로 들끓는 것을 보면 마음은 손끝 발끝까지 속속들이 스며있나 보다.
좀처럼 마음을 가누기 어려운 나날들이다. 잔인한 4월이 지나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왔건만, 이 눈부신 신록마저 아프다.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을 다쳤다.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더욱 해쳤다. 마음대로 웃을 수가 없다. 마음껏 숨 쉬기조차 죄스럽다. 세월호 사건 이후 온 나라 사람들이 ‘집단 우울증’에 빠진 듯하다는 진단은 이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국가냐?”
“어떻게 나라가 이 지경이냐?”
질문은 이미 오래된 것이다. 광주에서 민간인들이 총칼에 학살당할 때에도, 대구에서 지하철에 갇힌 사람들이 불타 죽을 때에도, 밀양에서 평생 땅만 파던 농투성이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일 때에도, 사람들은 물었다. 신음하며 절규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던 질문은, 결국 2014년에 이르러 통곡으로 터졌다.
심리학에서는 외부에서 갑작스런 자극이 가해졌을 때, 맞서 싸울 것인지 뒤돌아 도망칠 것인지를 선택하는 본능을 ‘투쟁 도주 반응(Fight or flight)’이라 명명한다. 그런데 이 깜깜한 굴길에서는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길이 없다. 막다른 절벽이다. 그렇다면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무엇과, 어떻게?! 또 다시 본능에게 물어 답을 구해야 한다. 무엇도, 어떤 정책과 보상도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삶으로 돌리지는 못하리라.
그럼에도 아주 조금, 그나마 나아진 방향으로 달라진 게 있다면 이처럼 치명상을 입은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것이다. 희생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정신과 의사들이 현장으로 달려가고, 이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관리할 심리 센터를 운영하는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언제고 희생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떠난 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죽음을 넘어 삶을 잠식한다. 살아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마음, 무너져 버린 마음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근간에 ‘힐링’이라는 말이 뭇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하지만 유행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대는 ‘힐링’은 왠지 절박하기보다 나른하게 들렸다. 치유가 필요하다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할 텐데, 그 상처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을 입힌 가해자의 정체가 사뭇 모호했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자살률과 바닥을 치는 행복지수가 분명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음에도, 사람들은 그저 자기 상처만을 끌어안은 채 꿍꿍 앓거나 당의정 같은 ‘힐링 마케팅’에 값싼 위로를 구했다. 그렇게 고립되고 조각난 마음의 퍼즐을 맞춰 가며, 어떻게든 우울과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혼자만의 힘으로 치유할 수 없다. 속세를 떠난 도인이 아니고서야 침몰하는 세상에서 내 마음만 달랑 구해낼 수 없는 것이다. 나만 평화롭고 나만 행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합동분향소에, 거리의 노란 리본에, 인터넷 게시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미안하다’는 말은 지금껏 해 왔던 허망한 발버둥질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다. 다시금 마음이 마음을 껴안아야 하고, 마음이 마음에 의지해야 할 까닭이 명백하다.
한편 예전과 다르게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예전에 돌보지 못한 마음들을 돌이켜 보면 아프다. 인터넷으로 현장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도 현실은 왜곡되고 조작되기까지 한다.
그러니 모든 언로가 막히고 통제당했던 시절, 비열한 공작으로 ‘선동’에 의해 ‘난동’을 일으키는 ‘폭도’라 매도당하며 거듭거듭 찢겨나갔을 마음들은 어땠을 것인가? 그때 방치되었던 마음들이 다시금 무거운 숙제를 더한다. 정신과 의사들의 견해에 의하면, 아직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의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다만 지금도 끊임없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 중이라고.
진정한 마음의 치유는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해지고, 책임자의 처벌과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시작될 수 있다. 거리에는 거리의 마음이 있다.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며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 그 마음과 함께하는 방법이다. 그 후로도 슬퍼해야 할 날들은 길게 남아 있다.
아무리 헤아리려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깊은 슬픔 속에 그 마음들이 뼈저리게 외로울 때, 그들을 잊지 않고 끝끝내 기억하는 것만이 마음에 대한 예의이리라.
<소설가>
좀처럼 마음을 가누기 어려운 나날들이다. 잔인한 4월이 지나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왔건만, 이 눈부신 신록마저 아프다.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을 다쳤다.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더욱 해쳤다. 마음대로 웃을 수가 없다. 마음껏 숨 쉬기조차 죄스럽다. 세월호 사건 이후 온 나라 사람들이 ‘집단 우울증’에 빠진 듯하다는 진단은 이로부터 나온다.
“어떻게 나라가 이 지경이냐?”
질문은 이미 오래된 것이다. 광주에서 민간인들이 총칼에 학살당할 때에도, 대구에서 지하철에 갇힌 사람들이 불타 죽을 때에도, 밀양에서 평생 땅만 파던 농투성이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일 때에도, 사람들은 물었다. 신음하며 절규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던 질문은, 결국 2014년에 이르러 통곡으로 터졌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언제고 희생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떠난 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죽음을 넘어 삶을 잠식한다. 살아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마음, 무너져 버린 마음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근간에 ‘힐링’이라는 말이 뭇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하지만 유행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떠들어대는 ‘힐링’은 왠지 절박하기보다 나른하게 들렸다. 치유가 필요하다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할 텐데, 그 상처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을 입힌 가해자의 정체가 사뭇 모호했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자살률과 바닥을 치는 행복지수가 분명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였음에도, 사람들은 그저 자기 상처만을 끌어안은 채 꿍꿍 앓거나 당의정 같은 ‘힐링 마케팅’에 값싼 위로를 구했다. 그렇게 고립되고 조각난 마음의 퍼즐을 맞춰 가며, 어떻게든 우울과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혼자만의 힘으로 치유할 수 없다. 속세를 떠난 도인이 아니고서야 침몰하는 세상에서 내 마음만 달랑 구해낼 수 없는 것이다. 나만 평화롭고 나만 행복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합동분향소에, 거리의 노란 리본에, 인터넷 게시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미안하다’는 말은 지금껏 해 왔던 허망한 발버둥질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다. 다시금 마음이 마음을 껴안아야 하고, 마음이 마음에 의지해야 할 까닭이 명백하다.
한편 예전과 다르게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예전에 돌보지 못한 마음들을 돌이켜 보면 아프다. 인터넷으로 현장이 생중계되는 상황에서도 현실은 왜곡되고 조작되기까지 한다.
그러니 모든 언로가 막히고 통제당했던 시절, 비열한 공작으로 ‘선동’에 의해 ‘난동’을 일으키는 ‘폭도’라 매도당하며 거듭거듭 찢겨나갔을 마음들은 어땠을 것인가? 그때 방치되었던 마음들이 다시금 무거운 숙제를 더한다. 정신과 의사들의 견해에 의하면, 아직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의 단계까지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다만 지금도 끊임없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 중이라고.
진정한 마음의 치유는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해지고, 책임자의 처벌과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시작될 수 있다. 거리에는 거리의 마음이 있다.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며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 그 마음과 함께하는 방법이다. 그 후로도 슬퍼해야 할 날들은 길게 남아 있다.
아무리 헤아리려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깊은 슬픔 속에 그 마음들이 뼈저리게 외로울 때, 그들을 잊지 않고 끝끝내 기억하는 것만이 마음에 대한 예의이리라.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