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영의 집과 사람] '시스템 키친'의 시작
2014년 04월 11일(금) 00:00 가가
더디 오든 빨리 오든 봄은 오는데 봄은 또한 이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집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국의 아파트들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현관을 열자마자 바로 거실이 있고 이 거실이 식당과 주방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침실은 귀퉁이에 있고 중앙에 거실-식당-주방이 한데 이어진다. 이른바 LDK(living room + dining room + kitchen) 구조다.
기능적으로도 거실과 주방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안방이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고 부엌은 되도록 숨겨진 공간이었던 것과 비교해볼 때 달라진 모습이다. 또한 식당을 별도의 공간으로 마련하기보다 거실과 주방을 연결하는 통로 부분에 식탁을 놓는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공식처럼 되어 있는 이러한 구성은 어떻게 해서 나왔을까.
기능적이고 위생적인 부엌은 1920년대 독일에서 탄생했다. 당시 유럽은 1차대전이 끝나고 세상이 급변하고 있었다. 건축학교에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곳이 주방이었다.
19세기의 부엌은 지금의 주방과는 개념이 다르다. 석탄으로 불을 때고 생선과 닭을 직접 손질하고. 그러니 헛간이나 마구간과 비슷한 작업공간이었다. 그런데 바우하우스(독일의 예술건축학교) 출신의 여성건축가 마가레테 쉬테 리호츠키(Margarete Schutte-Lihozky, 1897∼2000년)가 조리작업을 분석해 동선과 가사노동을 절반으로 줄인 새로운 주방을 선보였다.
이는 능률적 작업으로 생산원가를 절감해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주방의 조리 작업을 재료 준비-씻기-자르고 양념하기-굽고 끓이기-식탁 차리기 등으로 세분하여 주방을 구성한 것이다. 무조건 크고 넓은 것보다 오히려 주방이 작아야 동선이 짧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주방의 전면 폭을 2.8m로 정했다.
당시 유럽은 1차대전이 끝난 직후여서 주택 수요가 급증할 때였다. 1926년 이렇게 탄생한 부엌은 ‘프랑크프루트 주방’이라 불리면서 4년 동안 1만 호의 주택에 채택되었다. 이후 ‘시스템 키친’으로 불리면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여기에 식당과 거실이 한데 맞붙은 LDK는 1930년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당시 일본은 전쟁을 앞두고 사회 전반이 전시체제로 돌입하고 있었다. 남자는 징병이 되고 여자는 생산시설과 군수공장에서 일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가정에서의 가사노동 절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국제주의 건축에 크게 영향을 받은 일본인 건축가 니시야마 우조(1911∼1994년)는 주방과 거실을 한데 붙여 동선을 줄인 LDK를 만든다. 이후 일본이 패전하고 1950년대 재건의 시기를 맞이하면서 LDK는 더욱 확산된다. 협소한 주택에서 시간과 공간 및 동선을 모두 줄여 주는 주방은 1960∼70년대 빠르게 산업화의 길로 달리던 일본사회에 꼭 맞는 모델이었다.
이렇듯 아시아와 유럽이 직접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태평양 너머에서 전쟁을 겪지 않은 미국은 2차 대전 후의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독일은 전쟁 중 각종 군수제품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전쟁이 끝난 후 모두 가전제품으로 바뀌어 주방에 자리잡았다.
냉장고, 전기주전자,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세탁기, 청소기 등 생활의 필수품처럼 자리잡은 가전제품은 본디 독일이 전쟁 중에 개발한 군수품들이다. 이것이 전쟁을 겪지 않은 미국의 1950∼60년대 풍요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페미니즘의 확산과 함께 가사노동 절감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가전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1970∼80년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졌고 또한 맞벌이 가정도 늘어났다. 가사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가전제품의 구매가 늘어나면서 이 가전제품을 비치하는 장소로서의 주방의 위상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정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는 곳이 바로 각종 가전제품이 놓이는 주방이 된 것이다. 이제 주방은 맘스 데스크(mom’s desk, 가계부를 정리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엄마 책상)까지 두는 등 주부를 위한 제2의 거실이 되어가고 있다.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유래한 시스템 키친, 시간과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만든 LDK, 본래는 군수품이었던 가전제품의 배치 등 현대의 시스템 키친에는 1920∼30년대 전쟁을 준비했던 독일과 일본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
<건축 칼럼니스트>
대부분의 아파트는 현관을 열자마자 바로 거실이 있고 이 거실이 식당과 주방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침실은 귀퉁이에 있고 중앙에 거실-식당-주방이 한데 이어진다. 이른바 LDK(living room + dining room + kitchen) 구조다.
기능적이고 위생적인 부엌은 1920년대 독일에서 탄생했다. 당시 유럽은 1차대전이 끝나고 세상이 급변하고 있었다. 건축학교에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곳이 주방이었다.
당시 유럽은 1차대전이 끝난 직후여서 주택 수요가 급증할 때였다. 1926년 이렇게 탄생한 부엌은 ‘프랑크프루트 주방’이라 불리면서 4년 동안 1만 호의 주택에 채택되었다. 이후 ‘시스템 키친’으로 불리면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여기에 식당과 거실이 한데 맞붙은 LDK는 1930년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당시 일본은 전쟁을 앞두고 사회 전반이 전시체제로 돌입하고 있었다. 남자는 징병이 되고 여자는 생산시설과 군수공장에서 일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가정에서의 가사노동 절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국제주의 건축에 크게 영향을 받은 일본인 건축가 니시야마 우조(1911∼1994년)는 주방과 거실을 한데 붙여 동선을 줄인 LDK를 만든다. 이후 일본이 패전하고 1950년대 재건의 시기를 맞이하면서 LDK는 더욱 확산된다. 협소한 주택에서 시간과 공간 및 동선을 모두 줄여 주는 주방은 1960∼70년대 빠르게 산업화의 길로 달리던 일본사회에 꼭 맞는 모델이었다.
이렇듯 아시아와 유럽이 직접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태평양 너머에서 전쟁을 겪지 않은 미국은 2차 대전 후의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독일은 전쟁 중 각종 군수제품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전쟁이 끝난 후 모두 가전제품으로 바뀌어 주방에 자리잡았다.
냉장고, 전기주전자,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세탁기, 청소기 등 생활의 필수품처럼 자리잡은 가전제품은 본디 독일이 전쟁 중에 개발한 군수품들이다. 이것이 전쟁을 겪지 않은 미국의 1950∼60년대 풍요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페미니즘의 확산과 함께 가사노동 절감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가전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1970∼80년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졌고 또한 맞벌이 가정도 늘어났다. 가사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가전제품의 구매가 늘어나면서 이 가전제품을 비치하는 장소로서의 주방의 위상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정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는 곳이 바로 각종 가전제품이 놓이는 주방이 된 것이다. 이제 주방은 맘스 데스크(mom’s desk, 가계부를 정리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엄마 책상)까지 두는 등 주부를 위한 제2의 거실이 되어가고 있다.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유래한 시스템 키친, 시간과 공간을 절약하기 위해 만든 LDK, 본래는 군수품이었던 가전제품의 배치 등 현대의 시스템 키친에는 1920∼30년대 전쟁을 준비했던 독일과 일본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
<건축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