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31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매우 독특한 오페라가 신년을 맞는 제야 공연으로 펼쳐졌다.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로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 냈던 헨델, 비발디, 라모, 캄프라, 르클레어, 퍼셀, 레벨, 페란디니 등의 유명한 아리아들을 모아 바로크 파스티슈(혼성 모방)라는 이름으로 ‘마법의 섬’(The Enchanted Island)이라는 작품을 만든 것이었다.

내용 역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한 여름밤의 꿈’의 소재를 갖고 새롭게, 재창작한 작품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으로 공연이 탄생하기 전에도 국제적으로 많은 호기심과 주목을 끌었다. 이런 다양한 작품 속의 아리아들을 여기저기서 가져와 만든 오페라는, 즉 한 명의 작곡가가 통째로 작곡하지 않은 작품을 공연한 것은 오페라라는 장르가 생긴 이후로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내용도 무척 재미있었다. 우리로 따지면 용왕 역할인 바다의 신 넵튠역의 플라시도 도밍고가 등장해 요정에게 따끔한 질책을 받고는 “나는 늙고 이제 약해졌다고” 요정에게 엄살을 떠는 장면에서는 객석에 폭소가 터지기도 할 정도로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메트의 장점인 넓은 파급력의 상징인 Met HD시리즈를 통해 전세계의 극장에서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상연되었고, 청중들은 이제 이런 오페라도 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뉴욕 메트 오페라는 연출 같은 면에 있어 전체적인 기조는 유럽의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극장 등의 혁신적인 연출보다는 다소 보수적인 면모를 띠지만 레퍼터리 선택에 있어서는 과감함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중국 출신 작곡가로 우리에게는 주윤발과 장쯔이가 출연한 영화 ‘와호장룡’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는 탄둔의 음악과 장이모 감독의 연출로 진시황이 황제로 등극한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황제’(The First Emperor)를 상연하면서 중국의 경극과 악기들을 메트 무대와 오케스트라에 올린 동서양 음악의 하이브리드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또한 중국 성악가들을 다수 기용, 중국 색채의 무대와 함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이후 최고의 중국풍의 작품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에서는 초초상과 미해군 장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보통은 어린 소년으로 출연시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메트의 신작 연출에서는 1막 처음부터 한국, 중국, 일본이 약간씩 섞인 듯한 ‘마담 버터플라이’의 의상과 무대를 선보였다.

연출가 안소니 밍겔라는 아이가 등장하는 2막에서는 파격적으로 일본의 인형극인 분라쿠 인형을 등장시켜 아이의 희로애락을 연기하게 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일본의 전통예술과 서양 오페라와의 만남은 이 작품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메트에서는 서방에 잘알려진 중국과 일본의 전통 연희를 오페라와 접목시키는 시도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의 전통 연희가 이들의 오페라에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트의 무대와 연출은 늘 열려있고, 이들은 세계의 용광로인 뉴욕의 특성답게 새로운 것 또는 다른 곳의 전통을 즐겁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예술계에 더욱 분발을 요구하게 되는 시점이다.

얼마 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대구오페라 축제에서 대구시립오페라단의 ‘청라언덕’을 감상했다. 작곡가 박태준의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펼쳐지는 작품이었다. 귀에 익은 그의 가곡들을 오페라 내내 감상하는 것이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속으로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드라마틱하지 않았던 전반부에는 아쉬움도 남았는데 이럴 때 음악사의 예를 참고해보면 어떨까 싶다. 로시니, 베르디나 바그너, 푸치니도 완성한 후에 개작과 개정 작업을 거쳐 오늘날 공연되고 있는 완성본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려지는 신작 오페라들도 걸작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리뷰를 받고 개작해야 한다. 작곡가가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작품을 개정해 나간다면 우리는 정말 사랑받는 한국 신작오페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KBS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