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이 위기를 맞았다고 걱정한다. 전자책이 상당한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출판환경의 근본이 소용돌이 치면서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환경뿐 아니라 그 일에 종사하던 이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소용돌이의 원천이 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책의 자재 생산시설과 그 시스템, 곧 벌목업(伐木業)과 펄프회사와 제지회사들 그리고 이 거대한 생산의 고리와 먹이사슬들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이다.

출판사는 말할 것 없고, 인쇄잉크 회사를 비롯한 종이책의 여러 가공시스템과 인쇄소와 제책회사들, 그리고 도서 유통회사와 서점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고 있다. 예견된 일임에도,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날벼락 맞은 듯이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종이책의 위기는 오래 전부터 예상돼 왔고, 그 위기는 생계의 문제와는 당초부터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책이 호황일수록, 곧 책이 잘 팔려 인간의 욕망을 채워 주고, 채워진 인간의 욕망이 다시금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면서, 종이책의 위기는 가속화해 왔다. 책을 왜 만드는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나 명분도 아예 상실한 채.

이런 나의 관찰은 과연 역설일까? 아니다. 책의 근본을 바로 보자. 책을 장사의 목적으로 만들고 글 쓰고 하는 일이 올바른가 생각해 보자. 출판이 생계 유지를 위한 직업이나 사업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위기라면 위기인 것이다.

이제 만연돼 버린, 책을 향한 우리들의 비뚤어진 양식을 돌이켜볼 때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아우성치기에 앞서, 이런 오늘의 출판과 책의 현실은 근본적으로 반성돼야 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종이책을 향해 들려오는 불길한 예언의 소리를 알아챘다. 그 소리가 울려 올 때마다 ‘영혼도서관’이라는 대안을 가슴 한 켠에서 싹을 틔우고, 그리고 그 싹을 키워 왔다. 우리에게 가장 선(善)하고 값진 책을 만드는 일이 책 만드는 자의 소임일진대, 선하고 값진 책이란 과연 어떤 책일까를 궁리해 왔다.

오랜 성찰 끝에, 나는 그것이 ‘자서전(自敍傳)’임을 깨닫는다. 자서전이란 한 개인이 삶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성찰의 산물이다. 그 삶이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진실된 성찰의 기록이기에, 그 어느 책보다도 진정성 있는 책일 것이다. 그야말로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선하고 귀한, 가장 값진 책의 영역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에 출판되고 있는 자서전들은 과연 어떠한가. 위선과 허영과 거짓으로 가득할 뿐 아니라, 말(言語)을 다루는 전문적인 기량이 부족한 책이 대부분이어서, 그나마 담고 있는 내용마저 훼손하는 꼴이다. 잘 만들어진 책을 비교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일이고, 말과 글과 책의 근본을 아는 이라면 구구한 설명이 불필요한 이야기이다.

굳이 ‘자서전’이 아니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잘 만들어진 책이라면, 참된 자서전의 가치와 진실에 다를 바 있겠느냐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의 ‘영혼도서관’은 바로 이 같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 이를 꽂는 도서관을 말한다.

누구든 영혼도서관에 등록을 하면, ‘참된 책’에 관해 성찰하고 궁리하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참된 책을 향한 진리를 스스로 터득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참된 책의 가치를 터득한 사람만이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책의 수도원(修道院)’인 셈이다.

책의 수도원에서 수련된 회원들은 평생을 자신의 자서전을 써 나간다. 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살기 위해 쓴다. 이제 참된 자신의 기록을 하나하나 써 나가는 동안 그의 인생에는 크게 변화가 오고, 그는 참된 삶을 영위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글쓰기와 책 만들기는 깨닫는 자의 몫인 것이다. 이런 책 외에도, 우리 인류사(人類史)에 빛나는 기록문화재들 곧 ‘목민심서’ ‘난중일기’ ‘백범일지’ 등과 같은 기록들과 미래의 기록문화유산이 될 소중한 기록들을 다시 꼼꼼히 가다듬는, 곧 책을 염하는 ‘염소(殮所)’이기도 하다. 이런 귀중한 문화재들이 장삿속으로 들끓는 시장바닥에 맡겨져 있다면, 어찌 온당한 일이겠는가.

‘책의 수도원’을 세우는 첫 시험 장소로 헤이리 예술마을을 택했다. 이곳에 수도원 같은 아름다운 영혼도서관을 짓는다. 우리시대 최고의 건축가 조병수씨에 의해 재능 기부되었고, 설계가 거의 돼 간다. 책 세상에 놀라운 이적(異蹟)을 보게 되리라.

〈열화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