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의 클래식 세상만사] 오페라 페스티벌
2013년 08월 30일(금) 00:00 가가
올 여름 휴가로 난 베로나,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로 이어지는 유럽 페스티벌을 택해 10개의 공연을 봤다. 스케줄을 아예 플라시도 도밍고의 베로나 아레나 특별공연에 맞춰 떠나서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이 활약하고 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돌아왔다.
특히 금년은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해로 베로나 아레나 야외오페라 페스티벌은 베로나를 극의 배경으로 하는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빼놓고는 모두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나부코’ ‘아이다’ 등 베르디의 유명 걸작 오페라들만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특별 갈라 공연은 금년에 명예예술감독에 선정된 플라시도 도밍고에게 맡긴 것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지성적인 페스티벌 중의 하나로 불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베르디의 잘 올려지지 않는 초기 작품 ‘조반나 다르코’(잔다르크)와 ‘나부코’ ‘팔스타프’ 그리고 ‘돈 카를로’를 그리고 바그너 작품으로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한 작품만을 올렸다.
금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의 연출 경향은 다분히 복고적이었다. 페터 슈타인 연출의 ‘돈 카를로’나 스테판 헤르하임 연출의 ‘마이스터징어’ 등 오페라는 실험적이라기보다는 매우 빼어난 고증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의상과 절충적인 연출을 통해 대중친화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1937년생인 동독 출신의 페터 슈타인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영향을 강하게 끼쳤던 연출가로 특히 그를 대표하는 것은 몹씬(대중 합창장면)이다.
자신의 예술을 계속 견지해나가면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동시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편 1970년 노르웨이 출신인 헤르하임의 연출은 바그너 오페라 작품 중 유일하게 오페라 부파적인 코믹성을 갖고 있는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정말 웃음이 많이 나오게끔 재미있고 환상적으로 만들어내어 찬사를 받았다. 웃길 수 있는 ‘마이스터징어’조차도 때로 심각하고 지루하게 연출해왔던 기존의 연출 방법에 반기를 드는 듯 그는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고 독일 전통 동화인 그림 동화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등장하는 버전으로 연출해내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환상적인 동화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피날레에 반전이 있었다. 마치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그렇듯 이 모든 대작 오페라는 극에서 악역을 맡은 베크메서의 ‘한 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늘 연출을 대단히 중시해왔고 새로운 연출가들을 연극 작품을 통해 발굴하는 프로젝트도 해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연출의 경향은 유럽 전체 오페라 극장에 대단히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이번에 잘츠부르크에서 보여준 연출은 뉴욕 메트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아방가르드로 앞서나가지 않는 절충주의적인 연출을 보여줬고 이런 경향이 2014시즌의 세계 오페라 극장의 대세가 될 것임을 예견케 해주었다.
한편 바그너 오페라만 상연하는 뚝심과 독일문화의 전통 그리고 파격적인 연출로 늘 논란의 중심이 되어 온 바이로이트에서는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이 출연한 ‘로엔그린’을 봤는데 까다로운 바이로이트 청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모습이었다.
베이스 강병운, 연광철에 이어 한국 성악가로서는 세번째로 바이로이트 무대에 진출한 사무엘 윤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개막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인 유령선 선장 네덜란드인으로 출연해 격찬을 받았다.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계속 러브콜을 받아 내년에도 3년 연속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에 출연하게 되는 경사를 맞았다. 금년에는 ‘니벨룽의 반지’ 중 마지막 작품인 ‘신들의 황혼’에 베이스 아틸라 전도 출연해 바그너 음악과 독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넘치는 힘을 동시에 보유해야만 설 수 있는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 성악가들의 무대 위의 모습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유럽 최고의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들을 보면서 우리가 제작하고 있는 오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성악가와 연출가, 지휘자, 무대 미술, 분장 등 모든 분야가 어우러져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키는 오페라는 그만큼 실패 가능성도 높지만 이 모든 것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때 잊을 수 없는 큰 감동과 아름다움을 청중에게 줄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오페라 무대는 세계 수준에서 너무나 많이 뒤떨어져 있다. 하지만 좋은 성악의 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지휘, 무대미술, 연출, 조명 등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간다면 세계가 깜짝 놀라고 배우고 싶어할 오페라 무대가 우리 극장에서도 펼쳐질 날이 올 것이다.
〈음악평론가·KBS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DJ〉
특히 금년은 베르디와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해로 베로나 아레나 야외오페라 페스티벌은 베로나를 극의 배경으로 하는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빼놓고는 모두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나부코’ ‘아이다’ 등 베르디의 유명 걸작 오페라들만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특별 갈라 공연은 금년에 명예예술감독에 선정된 플라시도 도밍고에게 맡긴 것이었다.
금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페라의 연출 경향은 다분히 복고적이었다. 페터 슈타인 연출의 ‘돈 카를로’나 스테판 헤르하임 연출의 ‘마이스터징어’ 등 오페라는 실험적이라기보다는 매우 빼어난 고증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의상과 절충적인 연출을 통해 대중친화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1937년생인 동독 출신의 페터 슈타인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영향을 강하게 끼쳤던 연출가로 특히 그를 대표하는 것은 몹씬(대중 합창장면)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늘 연출을 대단히 중시해왔고 새로운 연출가들을 연극 작품을 통해 발굴하는 프로젝트도 해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연출의 경향은 유럽 전체 오페라 극장에 대단히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다. 이번에 잘츠부르크에서 보여준 연출은 뉴욕 메트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아방가르드로 앞서나가지 않는 절충주의적인 연출을 보여줬고 이런 경향이 2014시즌의 세계 오페라 극장의 대세가 될 것임을 예견케 해주었다.
한편 바그너 오페라만 상연하는 뚝심과 독일문화의 전통 그리고 파격적인 연출로 늘 논란의 중심이 되어 온 바이로이트에서는 한국 바리톤 사무엘 윤이 출연한 ‘로엔그린’을 봤는데 까다로운 바이로이트 청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모습이었다.
베이스 강병운, 연광철에 이어 한국 성악가로서는 세번째로 바이로이트 무대에 진출한 사무엘 윤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개막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인 유령선 선장 네덜란드인으로 출연해 격찬을 받았다.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계속 러브콜을 받아 내년에도 3년 연속 ‘네덜란드인’과 ‘로엔그린’에 출연하게 되는 경사를 맞았다. 금년에는 ‘니벨룽의 반지’ 중 마지막 작품인 ‘신들의 황혼’에 베이스 아틸라 전도 출연해 바그너 음악과 독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넘치는 힘을 동시에 보유해야만 설 수 있는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 성악가들의 무대 위의 모습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유럽 최고의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들을 보면서 우리가 제작하고 있는 오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성악가와 연출가, 지휘자, 무대 미술, 분장 등 모든 분야가 어우러져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키는 오페라는 그만큼 실패 가능성도 높지만 이 모든 것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때 잊을 수 없는 큰 감동과 아름다움을 청중에게 줄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오페라 무대는 세계 수준에서 너무나 많이 뒤떨어져 있다. 하지만 좋은 성악의 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지휘, 무대미술, 연출, 조명 등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간다면 세계가 깜짝 놀라고 배우고 싶어할 오페라 무대가 우리 극장에서도 펼쳐질 날이 올 것이다.
〈음악평론가·KBS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D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