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스페인 사람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잘 아시다시피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쓰리 테너 콘서트’를 결성,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결승전이 열리는 도시에서 공연하며 세계의 청중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주인공이었다.

그보다 앞서 1980년대 컨츄리 팝가수 존 덴버와 최초로 성악과 팝이 만나는 곡인 ‘퍼햅스 러브’로 크로스오버 성악의 문을 열어젖힌 성악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이렇게 대중성만 추구하는 가수로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히 큰 오산이다.

도밍고의 음악인생에 있어서 이런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작업은 매우 작은 부분이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국립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등 전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에서 수십년간 가장 멋지고 늠름하며 연기력 뛰어난 테너로 대활약을 펼쳤으며, 현재에도 도밍고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명 ‘쓰리 테너’ 중에서 도밍고는 카레라스나 파바로티와는 다른 종류의 성악가다. 원래 그는 테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바리톤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조역 역할이 많은 바리톤만 부르기에 그는 너무나 주인공처럼, 왕자처럼 잘 생겼다.

그래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959년에 멕시코 국립오페라단의 오디션에 바리톤으로 응모했지만 오페라단에서는 테너 곡을 불러보라고 했고, 그는 테너로 뽑혔다. 그래서 그는 노력 끝에 음을 끌어올려 후천적으로 테너가 된 인물이었다.

1961년에 그는 드디어 몬터레이에서 올려진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에 테너 주인공 알프레도 역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워낙에 용모가 수려하고, 키도 187cm로 훤칠하고, 기골이 장대해서 당시 작고 땅땅한 체격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일 때 혜성같이 나타난 젊은 테너 도밍고의 존재는 경이로운 것이었으며 그에 필적할 만한 테너는 없었다.

드디어 프랑코 코렐리처럼 잘생기고 늘씬한 테너가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도밍고에게는 파바로티처럼 천부적인 타고난 시원한 하이 C같은 고음은 없다. 하지만 그의 무대 위에서 타고난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그를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 중 한 명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도밍고의 끝없는 호기심은 모차르트에서 바그너, 중국의 탄둔에 이르기까지 무려 142개의 다른 오페라 역할을 부르게 했으며 100개가 넘는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또 젊은 시절 피아노와 지휘도 전공했던 도밍고는 실제로 피아노도 잘치고, 오케스트라 지휘도 만만치 않게 잘한다.

1973년부터 베르디 오페라를 지휘해온 그는 KBS교향악단에서부터 베를린필까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했으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미사나 오페라를 지휘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워싱턴 오페라의 예술감독과 L.A오페라의 사장을 맡아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예술행정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72세인 도밍고는 요즘에 테너로서 약간 고음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현명한 그는 다시 바리톤으로 돌아갔다.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와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역을 메트오페라에서 불렀으며 올해 여름에는 베로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나부코’역에 도전해 베르디 바리톤으로서 족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이자 예술가인 도밍고. 그가 승승장구하는 또 하나의 비결이 있다. 그의 성공은 온화한 품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친화력으로 자신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을 화합하게 만드는 그는 메트오페라의 경비원이나 청소부들의 이름은 물론 아이들의 이름까지도 다 외우며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는 일이 많고, 바쁜 예술가가 이렇게 극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하니 모두들 그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빼어난 실력과 품성을 겸비한 세계 예술계를 움직이는 거인. 난 도밍고와 같은 한국 음악가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음악평론가·KBS클래식FM ‘장일범의 가정음악’ 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