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웅의 영혼도서관] 전쟁과 개똥藥-6.25 전란을 돌이켜 보다
2013년 06월 25일(화) 00:00 가가
경기도 파주 ‘책의 도시’에서는 6·25 정전(停戰) 60주년을 기념하는 ‘2013년, 전쟁과 평화’전이 열리고 있다. 1500여 점의 귀중한 전쟁 관계 도서와 문헌들을, 전쟁의 역사와 현장과 함께 그동안의 학술적 성과를 망라하면서, 올해 발간된 책들까지 일괄해서 볼 수 있다.
꽤나 방대하다고 할 수 있는 특정분야의 이 문헌들을 통해 제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참상, 그 비극의 현장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전시회라 평가받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이런 구호들을 읽을 수 있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존 F. 케네디) “매우 필요하고 정의롭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범죄행위이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전쟁을 하고 싶다는 자들, 그들은 모두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이다.”(래리 리브스)
이와 함께 전쟁의 참상을 보여 주는 여러 사진들이 붙어 있고, 전시된 책들을 펼쳐드는 순간 이런 문맥과 이미지들이 책 속 도처에 나타난다.
결국 이 전시는 전쟁의 비극적 실상과 전모를 알림으로써, 어떻게든 전쟁은 막아야 하고,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값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한, 내가 평소에 주장하듯이 책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평화의 도구’로서 기여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보여 준다.
6·25 나는 고향인 강원도 강릉 선교장(船橋莊)에서 살고 있었다. 경포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1950년 6월 전쟁이 터지자 동해안 지역의 전세(戰勢) 역시 일방적이어서, 피란 길에 나섰던 우리 선교장 일행은 앞질러 내려온 북한군에 의해 발길을 고향집으로 되돌려야 했다.
이때부터 선교장은 석 달 내내 북한군 아래 놓여 있다가, 서울보다는 이틀 늦은 9월30일 국군에 의해 수복되었다. 하지만 미처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들이 낙오되어 태백산맥으로 숨어들었고, 고립된 그들이 생필품을 얻기 위해 수시로 민촌으로 쳐내려 오곤 하여, 국군 및 경찰과의 잦은 충돌로 우리는 노상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때 사상이나 이념과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비극의 풍경을 목격했던 어린 우리들이 60년 세월을 보내고도 그대로인 오늘의 분단 현실을 보면서, 누구의 책임이랄 수 없는 우리 모습이 새삼 부끄럽고, 한심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1951년 새해를 맞으면서는 1·4후퇴라는 새로운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유엔군과 국군의 북진으로 북한군이 궤멸 상태에 이르자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이른바 인해전술의 기세에 눌려, 유엔군과 국군은 다시금 후퇴하기 시작한다. 불안해진 우리 식구들도 피란 길에 올라, 울진의 죽변(竹邊)이라는 산촌마을에서 그해 겨울을 보냈다.
그때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끼니를 잇지 못해 모두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여러 질병이 뒤따랐다. 의사이셨던 아버지도 간단한 외과적 처치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살배기 어린 아우가 몹쓸 홍역을 앓게 됐다. 당시 어린아이에게 홍역은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는데, 병은 심해 가기만 하고 어떤 처치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민간요법에 개똥을 끓여 먹이면 효험을 본다는 속설이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머니는 이 속설을 따르기로 결심하신다. 의사이신 아버지는 아예 고개를 돌려 모른 체하셨다. 어머니는 형과 나에게 개똥을 주워 오도록 엄명을 내리셨다.
하지만 산골마을에 개가 있어 봤자 빤했고, 한겨울 얼어붙은 산야에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어디 말라 비틀어진 개똥이라도 있었겠는가. 개똥도 막상 약에 쓰려니 없었던 것이다. 우리 형제는 거의 한나절을 헤맨 끝에, 철 지난 고추밭에서 비바람에 씻기고 바랜 개똥 한 덩이를 찾아냈고, 어머니는 이를 냄비에 넣고 한약 달이듯이 조심스럽게 끓이셨다.
그 후에 어린 아우가 그걸 먹고 어쩐지, 그 일에 관해 형과 나는 너무나 끔찍하여 기억에 담지 않았다. 우리가 기댈 그 어떤 것도 없었던 전시 상황에서 어머니의 자식 구하기 약 처방을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의사인 아버지까지도, 약 아닌 개똥약의 효험을 믿는 이는 없겠지만, 어린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뜨거운 모성 때문인지, 아우는 6·25를 지내고 환갑, 진갑을 잘 넘긴 지금까지 건재해 있다.
전시에 소개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사진집들을 보노라면, 이런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으로 극한에 내몰린 가족의 비참했던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 지울 수 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열화당 대표>
꽤나 방대하다고 할 수 있는 특정분야의 이 문헌들을 통해 제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참상, 그 비극의 현장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전시회라 평가받고 있다.
이와 함께 전쟁의 참상을 보여 주는 여러 사진들이 붙어 있고, 전시된 책들을 펼쳐드는 순간 이런 문맥과 이미지들이 책 속 도처에 나타난다.
결국 이 전시는 전쟁의 비극적 실상과 전모를 알림으로써, 어떻게든 전쟁은 막아야 하고,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값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한, 내가 평소에 주장하듯이 책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평화의 도구’로서 기여해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보여 준다.
그때 사상이나 이념과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비극의 풍경을 목격했던 어린 우리들이 60년 세월을 보내고도 그대로인 오늘의 분단 현실을 보면서, 누구의 책임이랄 수 없는 우리 모습이 새삼 부끄럽고, 한심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1951년 새해를 맞으면서는 1·4후퇴라는 새로운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유엔군과 국군의 북진으로 북한군이 궤멸 상태에 이르자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이른바 인해전술의 기세에 눌려, 유엔군과 국군은 다시금 후퇴하기 시작한다. 불안해진 우리 식구들도 피란 길에 올라, 울진의 죽변(竹邊)이라는 산촌마을에서 그해 겨울을 보냈다.
그때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끼니를 잇지 못해 모두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여러 질병이 뒤따랐다. 의사이셨던 아버지도 간단한 외과적 처치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살배기 어린 아우가 몹쓸 홍역을 앓게 됐다. 당시 어린아이에게 홍역은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는데, 병은 심해 가기만 하고 어떤 처치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민간요법에 개똥을 끓여 먹이면 효험을 본다는 속설이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머니는 이 속설을 따르기로 결심하신다. 의사이신 아버지는 아예 고개를 돌려 모른 체하셨다. 어머니는 형과 나에게 개똥을 주워 오도록 엄명을 내리셨다.
하지만 산골마을에 개가 있어 봤자 빤했고, 한겨울 얼어붙은 산야에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어디 말라 비틀어진 개똥이라도 있었겠는가. 개똥도 막상 약에 쓰려니 없었던 것이다. 우리 형제는 거의 한나절을 헤맨 끝에, 철 지난 고추밭에서 비바람에 씻기고 바랜 개똥 한 덩이를 찾아냈고, 어머니는 이를 냄비에 넣고 한약 달이듯이 조심스럽게 끓이셨다.
그 후에 어린 아우가 그걸 먹고 어쩐지, 그 일에 관해 형과 나는 너무나 끔찍하여 기억에 담지 않았다. 우리가 기댈 그 어떤 것도 없었던 전시 상황에서 어머니의 자식 구하기 약 처방을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의사인 아버지까지도, 약 아닌 개똥약의 효험을 믿는 이는 없겠지만, 어린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뜨거운 모성 때문인지, 아우는 6·25를 지내고 환갑, 진갑을 잘 넘긴 지금까지 건재해 있다.
전시에 소개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사진집들을 보노라면, 이런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으로 극한에 내몰린 가족의 비참했던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 지울 수 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열화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