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문학과 삶] 굶는 과? 국문과!
2013년 05월 24일(금) 00:00 가가
졸업한 지 이십여 년 만에 대학 선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어문학계열 학과들과 철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도서관학과 등이 ‘문과대학’이라는 단과대학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철학과를 졸업한 친구들의 근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보아 공인중개사가 되어 있었고, 선배 한 분은 수제 구두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다른 선배는 정치인이 되어 학교 인근의 지역구에 출마했다 낙선하고 재기를 준비 중이며, 친구 하나는 공부를 계속해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는데 엉뚱하게도 철학과가 아니라 경영학과 교수라고 했다.
“철학과는 정말 대단한 과로구나. 철학만 빼놓고 세상일을 다 하네!”
작금에 대전의 배재대학교에서 마련한 ‘2014학년도 학제개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를 통합해 ‘한국어문학과’로 개편하고, 프랑스어문화학과는 폐지하며, 해당 학과 교수들은 신설되는 항공운항과, 중소기업컨설팅학과, 사이버보안학과 등의 실용학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구조 조정안’에 다름 아닌 개편책의 핵심은 이른바 ‘비실용적인’, 취업과 직결되지 않는 전공들의 꼬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학교의 이 같은 결정에 국문과 소속 재학생 및 총학생회 소속 학생 100여 명이 총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실로 이런 현상은 배재대학교의 일만이 아닐뿐더러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국문과를 비롯한 어문학과들과 철학과, 이과 계열의 순수 자연과학 전공들이 폐지되거나 통폐합되어 ‘퇴출’당했다. 이유는 단순하고도 선명하다. 이른바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업이 잘 되지 않는 학과들을 개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슬픈 일이다. 오죽하면 모국어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로 규정하면서까지 학과를 통폐합하려는 것일까? 지금껏 문학과 문화를 연구해온 교수들이 항공과 컨설팅과 보안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배재대의 경우 전신이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가 만든 ‘배재학당’인데, 배재학당의 빛나는 전통이자 자랑이 바로 한글연구의 개척자 주시경 선생과 시인 김소월, 소설가 나도향을 배출했다는 것이기에 그 씁쓸함이 더하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좌우의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등장한 200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은 바로 ‘먹고사니즘’이다. 이른바 IMF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면서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속화되고 물화되었다. 먹고사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고통스럽지만 너무나 명백한 현실 앞에 가치는 퇴화하고 이상은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래 희망이라고 늘어놓는 직업들을 보노라면 미래는 환자와 죄인들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만 같다. 그 많은 의사와 변호사들이 먹고살아가려면 그만큼 아프고 나쁜 사람들이 늘어나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몇 해 전부터 엉뚱하게도 ‘인문학’의 붐이 일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이 길러지지 않으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었다. 한국은 더 이상 선진국의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카피할 수 없는, 다른 나라들의 견제와 추격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실용적’ 목적을 가진 인문학 붐의 한계는 명확하다. 인문학은 벼락치기를 하여 배우고 익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문학과 철학을 비롯한 순수 학문들이 당장의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인문학 전공들을 없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을 강조하는 모순은 진정한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다.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는 “통역관을 양성하거나 우리 학교의 일꾼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내보내려는 것이다”라고 설립 목적을 밝혔다. 백여 년 뒤 학교가 취업대비학원처럼 취급받고, 대학생이 곧 취업준비생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예견하는 듯한 일침이다.
기실 이십여 년 전 그때도 사정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전공한 국어국문학과의 별명은 ‘굶는 과’였다.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철학과 등도 우리보다 더 ‘배부른’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석의 시와 루카치의 비평과 춘향전을 반독하며, 달빛으로 바위에 시를 새긴 중세의 이름 없는 음유시인부터 대작가 카뮈와 보부아르의 작품을 읽었다.
헤르만헤세와 토마스만과 카프카의 저작을 강독하며, 유가와 도가와 불가의 동양철학과 데카르트부터 헤겔까지의 서양철학을 탐구하면서 우리의 마음만은 푸짐하고 불렀다.
20년 후 결국엔 문학만 빼놓고, 철학만 빼놓고 별별 일을 다 하며 살게 되었을지언정, 피둥피둥한 비곗살 같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어떤 힘은 야위었으나 형형한 그때의 영혼으로부터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어리석지만, 단호하게.
<소설가>
한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보아 공인중개사가 되어 있었고, 선배 한 분은 수제 구두를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다른 선배는 정치인이 되어 학교 인근의 지역구에 출마했다 낙선하고 재기를 준비 중이며, 친구 하나는 공부를 계속해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는데 엉뚱하게도 철학과가 아니라 경영학과 교수라고 했다.
작금에 대전의 배재대학교에서 마련한 ‘2014학년도 학제개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를 통합해 ‘한국어문학과’로 개편하고, 프랑스어문화학과는 폐지하며, 해당 학과 교수들은 신설되는 항공운항과, 중소기업컨설팅학과, 사이버보안학과 등의 실용학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기가 막히고, 슬픈 일이다. 오죽하면 모국어를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로 규정하면서까지 학과를 통폐합하려는 것일까? 지금껏 문학과 문화를 연구해온 교수들이 항공과 컨설팅과 보안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배재대의 경우 전신이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가 만든 ‘배재학당’인데, 배재학당의 빛나는 전통이자 자랑이 바로 한글연구의 개척자 주시경 선생과 시인 김소월, 소설가 나도향을 배출했다는 것이기에 그 씁쓸함이 더하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좌우의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등장한 200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은 바로 ‘먹고사니즘’이다. 이른바 IMF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면서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속화되고 물화되었다. 먹고사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고통스럽지만 너무나 명백한 현실 앞에 가치는 퇴화하고 이상은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래 희망이라고 늘어놓는 직업들을 보노라면 미래는 환자와 죄인들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만 같다. 그 많은 의사와 변호사들이 먹고살아가려면 그만큼 아프고 나쁜 사람들이 늘어나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몇 해 전부터 엉뚱하게도 ‘인문학’의 붐이 일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이 길러지지 않으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었다. 한국은 더 이상 선진국의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카피할 수 없는, 다른 나라들의 견제와 추격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실용적’ 목적을 가진 인문학 붐의 한계는 명확하다. 인문학은 벼락치기를 하여 배우고 익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문학과 철학을 비롯한 순수 학문들이 당장의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인문학 전공들을 없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을 강조하는 모순은 진정한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다.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는 “통역관을 양성하거나 우리 학교의 일꾼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내보내려는 것이다”라고 설립 목적을 밝혔다. 백여 년 뒤 학교가 취업대비학원처럼 취급받고, 대학생이 곧 취업준비생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예견하는 듯한 일침이다.
기실 이십여 년 전 그때도 사정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전공한 국어국문학과의 별명은 ‘굶는 과’였다.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철학과 등도 우리보다 더 ‘배부른’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석의 시와 루카치의 비평과 춘향전을 반독하며, 달빛으로 바위에 시를 새긴 중세의 이름 없는 음유시인부터 대작가 카뮈와 보부아르의 작품을 읽었다.
헤르만헤세와 토마스만과 카프카의 저작을 강독하며, 유가와 도가와 불가의 동양철학과 데카르트부터 헤겔까지의 서양철학을 탐구하면서 우리의 마음만은 푸짐하고 불렀다.
20년 후 결국엔 문학만 빼놓고, 철학만 빼놓고 별별 일을 다 하며 살게 되었을지언정, 피둥피둥한 비곗살 같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어떤 힘은 야위었으나 형형한 그때의 영혼으로부터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어리석지만, 단호하게.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