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문학과 삶] 아들의 농사
2013년 04월 26일(금) 00:00 가가
꽃샘잎샘이 유별났던 2주 전의 일이다. 아침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아들아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토마토는 둘 다 죽고, 고추도 하나 죽은 것 같고, 깻잎은 두 개 죽고, 상추도 다 시들었다. 상추가 시들 줄은 몰랐네…’
문자 뒤에는 우는 얼굴을 형상화한 이모티콘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등굣길에 지난주에 심은 모종들이 걱정되어 학교 앞 텃밭을 살펴보다 이상 저온으로 ‘냉해’를 입은 작물을 발견한 것이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소꿉질하듯 벌인 농사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온 것을 알기에 얼른 위로의 답장을 보냈다.
‘상추랑 깻잎은 일단 물 줘 보고, 토마토랑 고추 죽은 건 모종 사서 중간고사 끝나고 다시 심자. 열매채소는 5월에 심어도 충분하다니, 속상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렴.’ 죽은 모종을 뽑아내며 아파할 그 마음이 안쓰럽고 사랑옵아 문자 뒤에 ‘하트’ 표시도 붙여 보냈다. 더디 오는 봄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아들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필수 과목으로 ‘농사’를 가르친다. 네 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한 번씩 2시간 수업을 하며 직접 작물을 파종하고 재배하고 수확한다. 학교에서 빌린 땅은 애초에 농사땅이라기보다 돌밭이라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돌을 고르고 흙을 다지기에 진땀을 뺐다.
농사 수업이 있는 금요일마다 집에 돌아온 아이의 머리에는 먼지가 새뽀얗게 앉아 있었다. 땀과 흙물로 얼룩진 옷을 빨며 혹 힘들거나 귀찮지 않은가 물으니, 아이는 정색을 하고 농사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의 하나라고 대답한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중간고사가 끝나면 떠날 농촌봉사 체험활동을 자나 깨나 기다린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진행한 농촌봉사 활동이 벌써 다섯 번째인데, 올해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3년간 찾았던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로 떠난다.
중·고교 6개 학년이 나누어 떠나는 활동지는 경기, 강원, 충청도의 경계 지역에 자리한 곳으로 학교 급식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생활협동조합의 소속 마을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저희들이 평소에 먹는 먹거리들이 자라는 곳을 찾아 그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는 셈이다. 농촌봉사 체험활동의 주제가 ‘삶의 뿌리를 찾아서’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아무리 주제가 좋고 의미가 있어도 그렇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스팔트 키드’들에게 농사일이나 농촌 생활이 매양 편편할 리 없다. 서툰 고양이 손에게 큰일이야 맡기지 않겠지만 낯선 노동이 고단하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세면과 잠자리가 익숙한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고추밭, 담배밭에서 김을 매고 비닐을 치우며 아이들은 일손을 돕는답시고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논두렁에서 새참을 먹다 어른들께서 권해주신 막걸리 한 잔에 알근하여 행복해한다. 조금의 불편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즐거운 체험이 2박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실로 도시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향’을 갖지 못한 세대다. 이미 고향을 떠난 부모가 형편이 되는대로 자리 잡은 타향에서 태어나 집값이나 학군에 따라 이사를 다녔던 아이들에게는 추억하며 그리워할 어딘가가 없다. 그러니 세상의 상처로부터 도망쳐 숨어들 곳이 없을뿐더러 방황하다 돌아갈 곳도 없다. 덜 여물어 상처받기 쉬운 어리고 여린 몸과 마음으로 고작 PC방에 숨어들거나 비정한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아이의 학교에는 이 농촌봉사 체험활동과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사춘기의 반항으로 부모와 다툰 아이 하나가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가출을 했단다. 부모가 사방으로 찾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대소동 끝에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연락이 온 곳은 바로 농촌봉사 체험활동을 갔던 바로 그 마을. 이장님 댁에서 머슴처럼 일을 하고 밥을 얻어먹으며 며칠을 보낸 아이는 평화로운 얼굴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나 어쨌다나.
하루빨리 복탄리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아들아이에게 그곳이 왜 그리도 좋으냐고 물으니 두 가지를 손꼽는다. 하나는 일을 나가며 지나는 남한강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바라본 밤하늘에 그토록 무수하던 별무리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그리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의 기쁨과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이 농촌 체험을 통해 땀의 가치와 먹거리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러한 교훈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추억이란 본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니까. 올해도 열여덟 살짜리 아들의 농사가 부디 넉넉하고 행복하길 빌어 본다.
<소설가>
‘토마토는 둘 다 죽고, 고추도 하나 죽은 것 같고, 깻잎은 두 개 죽고, 상추도 다 시들었다. 상추가 시들 줄은 몰랐네…’
문자 뒤에는 우는 얼굴을 형상화한 이모티콘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등굣길에 지난주에 심은 모종들이 걱정되어 학교 앞 텃밭을 살펴보다 이상 저온으로 ‘냉해’를 입은 작물을 발견한 것이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소꿉질하듯 벌인 농사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온 것을 알기에 얼른 위로의 답장을 보냈다.
아들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필수 과목으로 ‘농사’를 가르친다. 네 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한 번씩 2시간 수업을 하며 직접 작물을 파종하고 재배하고 수확한다. 학교에서 빌린 땅은 애초에 농사땅이라기보다 돌밭이라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돌을 고르고 흙을 다지기에 진땀을 뺐다.
중·고교 6개 학년이 나누어 떠나는 활동지는 경기, 강원, 충청도의 경계 지역에 자리한 곳으로 학교 급식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생활협동조합의 소속 마을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저희들이 평소에 먹는 먹거리들이 자라는 곳을 찾아 그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는 셈이다. 농촌봉사 체험활동의 주제가 ‘삶의 뿌리를 찾아서’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아무리 주제가 좋고 의미가 있어도 그렇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스팔트 키드’들에게 농사일이나 농촌 생활이 매양 편편할 리 없다. 서툰 고양이 손에게 큰일이야 맡기지 않겠지만 낯선 노동이 고단하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세면과 잠자리가 익숙한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고추밭, 담배밭에서 김을 매고 비닐을 치우며 아이들은 일손을 돕는답시고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논두렁에서 새참을 먹다 어른들께서 권해주신 막걸리 한 잔에 알근하여 행복해한다. 조금의 불편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즐거운 체험이 2박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실로 도시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향’을 갖지 못한 세대다. 이미 고향을 떠난 부모가 형편이 되는대로 자리 잡은 타향에서 태어나 집값이나 학군에 따라 이사를 다녔던 아이들에게는 추억하며 그리워할 어딘가가 없다. 그러니 세상의 상처로부터 도망쳐 숨어들 곳이 없을뿐더러 방황하다 돌아갈 곳도 없다. 덜 여물어 상처받기 쉬운 어리고 여린 몸과 마음으로 고작 PC방에 숨어들거나 비정한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아이의 학교에는 이 농촌봉사 체험활동과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사춘기의 반항으로 부모와 다툰 아이 하나가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가출을 했단다. 부모가 사방으로 찾아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대소동 끝에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연락이 온 곳은 바로 농촌봉사 체험활동을 갔던 바로 그 마을. 이장님 댁에서 머슴처럼 일을 하고 밥을 얻어먹으며 며칠을 보낸 아이는 평화로운 얼굴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나 어쨌다나.
하루빨리 복탄리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아들아이에게 그곳이 왜 그리도 좋으냐고 물으니 두 가지를 손꼽는다. 하나는 일을 나가며 지나는 남한강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바라본 밤하늘에 그토록 무수하던 별무리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그리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의 기쁨과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이 농촌 체험을 통해 땀의 가치와 먹거리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러한 교훈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추억이란 본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니까. 올해도 열여덟 살짜리 아들의 농사가 부디 넉넉하고 행복하길 빌어 본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