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문학과 삶] 끔찍한 어떤 성공
2013년 03월 29일(금) 00:00 가가
“최근에 어떤 끔찍한 성공을 경험하셨습니까?”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칼 융(Carl Gustav Jung)은 자신의 방을 찾은 환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성공’을 지상의 과업이요,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뜬금없는 ‘뻘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부와 명예와 명망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성공이 어떻게 끔찍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성공하지 못한 ‘루저’들의 강짜가 아닌가?
하지만 개인의 무의식에서 그림자(shadow)를 발견한 융의 이론에 따르면 긍정적 측면의 이면에는 반드시 이에 수반되는 부정적 측면, 그림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빛이 강렬할수록 어둠이 깊은 이치와 마찬가지로, 외면적으로 크게 성공할수록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도 더 커진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자란 스스로 외면하거나 숨기고 싶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잔인한 상상, 음습한 욕망, 스스로조차 혐오할 수밖에 없는 추악한 본질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면 원할수록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에 닿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성공을 향해 일로매진할 수밖에 없다. 남들처럼 놀고, 쉬고, 즐겨서는 절대 안 된다. 자칫 실수를 저지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완벽에 다시 완벽을 기해야 한다. 뒤돌아보거나 옆을 힐끗거리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리하여 오랜 강박과 절제와 이기심으로 마침내 결승점에 다다랐을 때, ‘성공’한 이의 심경은 그다지 편편할 수 없다. 강박과 절제로 남들이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어떤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했기에, 만족과 충만감을 느끼기보다는 보상 심리에 사로잡히기 십상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인정과 대접을 받아야 한다.
왜? 나는 그만큼 ‘희생’했기에! 성공한 자신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보다는 비웃으며 경멸하는 강퍅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왜? 그들은 무능력하고 나태한 패자이기에!
‘성공’의 이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념이나 정파 따위도 간단히 뛰어넘는다. 이미 높은 지위를 가지고 그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청문회 자리에 나온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놀라 자빠질 만큼의 편법과 불법의 이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이러구러 수십 년을 먼지와 티끌의 세상에서 구르며 살다 보니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에 한 눈쯤 질끈 감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먼지 정도가 아니라 숫제 ‘방사능 분진’이다. 주변 사람들을 재채기하게 만드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중병을 들게 만드는 유독성이다.
보통 사람은 어쩌다 한 번 편법을 쓰는 일도 어렵고 귀찮은데 어쩌면 그리 일상 다반사로 법망을 빠져나가 불법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때 그들의 그림자는 냉혈한 이기심으로 병들어 있다. 성공을 위해 양심과 자긍심을 던져버린 흔적이다.
때로는 고결한 지위와 맞바꾼 비틀린 욕망이 그림자에 묻어나기도 한다. 근사한 멜로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플래시 세례를 받는가 하면, 권력가들이 현세의 힘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황음한 난탕을 치는 ‘동물의 왕국’을 담은 동영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무임승차하지 말고 꿈을 향해 달리라고 채근하던 유명 강사가 타인의 연구 성과에 무임승차했음이 드러나고, 인권을 말하던 입으로 성희롱을 한 명사가 얼떨에 성적 취향을 ‘아웃팅’ 당하기도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련의 황당하고도 어리떨떨한 사태들은 그 대단한 ‘성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단순하고도 무서운 삶의 이치가 때로는 성공 대신 원칙을, 양심을, 사람을, 가족을, 건강을, 그리고 마침내는 꿈을 잃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성공한 것일까? 과연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공이란 무엇일까?
짧은 소견머리로 미련하게 주장해 왔다. 나도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성공은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 하고 싶은 일을 모조리 다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성공이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가치와 욕망에 반(反)하는, 나를 왜곡하고 소진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이자 힘이다.
성공의 정의를 다시 세우고, 성공의 기준을 조금만 바꾸면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고 빛날 수 있다. 비로소 자기 삶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이제는 구름에 가리면 사라질 그 뻔한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 더욱 짙어지는 그림자를 돌보아야 할 때이다.
〈소설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칼 융(Carl Gustav Jung)은 자신의 방을 찾은 환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성공’을 지상의 과업이요,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뜬금없는 ‘뻘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부와 명예와 명망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성공이 어떻게 끔찍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성공하지 못한 ‘루저’들의 강짜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면 원할수록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에 닿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성공을 향해 일로매진할 수밖에 없다. 남들처럼 놀고, 쉬고, 즐겨서는 절대 안 된다. 자칫 실수를 저지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완벽에 다시 완벽을 기해야 한다. 뒤돌아보거나 옆을 힐끗거리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성공’의 이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념이나 정파 따위도 간단히 뛰어넘는다. 이미 높은 지위를 가지고 그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청문회 자리에 나온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놀라 자빠질 만큼의 편법과 불법의 이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이러구러 수십 년을 먼지와 티끌의 세상에서 구르며 살다 보니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에 한 눈쯤 질끈 감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먼지 정도가 아니라 숫제 ‘방사능 분진’이다. 주변 사람들을 재채기하게 만드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중병을 들게 만드는 유독성이다.
보통 사람은 어쩌다 한 번 편법을 쓰는 일도 어렵고 귀찮은데 어쩌면 그리 일상 다반사로 법망을 빠져나가 불법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때 그들의 그림자는 냉혈한 이기심으로 병들어 있다. 성공을 위해 양심과 자긍심을 던져버린 흔적이다.
때로는 고결한 지위와 맞바꾼 비틀린 욕망이 그림자에 묻어나기도 한다. 근사한 멜로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플래시 세례를 받는가 하면, 권력가들이 현세의 힘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황음한 난탕을 치는 ‘동물의 왕국’을 담은 동영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무임승차하지 말고 꿈을 향해 달리라고 채근하던 유명 강사가 타인의 연구 성과에 무임승차했음이 드러나고, 인권을 말하던 입으로 성희롱을 한 명사가 얼떨에 성적 취향을 ‘아웃팅’ 당하기도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련의 황당하고도 어리떨떨한 사태들은 그 대단한 ‘성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단순하고도 무서운 삶의 이치가 때로는 성공 대신 원칙을, 양심을, 사람을, 가족을, 건강을, 그리고 마침내는 꿈을 잃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성공한 것일까? 과연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성공이란 무엇일까?
짧은 소견머리로 미련하게 주장해 왔다. 나도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성공은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 하고 싶은 일을 모조리 다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성공이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가치와 욕망에 반(反)하는, 나를 왜곡하고 소진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이자 힘이다.
성공의 정의를 다시 세우고, 성공의 기준을 조금만 바꾸면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고 빛날 수 있다. 비로소 자기 삶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이제는 구름에 가리면 사라질 그 뻔한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 더욱 짙어지는 그림자를 돌보아야 할 때이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