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의 세상읽기] 정치는 '정치적'이라야 한다
2013년 03월 22일(금) 00:00 가가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2008년 대통령 선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잠꼬대였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인종차별의 장벽을 깨고 대망을 이룬 데는 오바마 캠프의 특별한 미디어 전략이 한 몫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오바마 캠프는 당시 미국 인구의 55%가 SNS를 이용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면서 예비선거 과정부터 이들 사이트를 적극 공략했다.
2007년 2월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과 동시에 공식 웹사이트인 BarakObama.com을 개설했다. 페이스북과 유사한 형태의 네트워킹 사이트인 My.BarakObama.com(MyBO)도 만들었다. 그해 8월에 이미 페이스북에서 1만2200명의 친구를, 마이스페이스에서 15만8000명의 친구를 만들었다. 오바마의 SNS 친구 수는 당시 공화당 예비선거 모든 주자가 만든 네트워크 친구 수보다 2배 이상이었다.
오바마 캠프는 사이트에 가입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직화에 몰두했다. 다양한 그룹의 지도자들과 만나고 컨퍼런스도 열었다. 이들을 자원봉사자로 유도하면서 자율적인 연대활동을 촉구하고 지원했다. 대선 기간에 활동한 300만 명의 자원봉사자 대부분을 SNS를 통해 모집했다.
또 SNS 이용자를 대상으로 마이크로타게팅(microtargeting) 캠페인을 벌였다. 오바마 캠프는 MyBO를 비롯한 웹사이트에 방문한 사람들, SNS 사이트에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 이들을 기반으로 하는 자원봉사자들, 또한 그들이 연계한 수많은 이웃들에 대한 인구학적 정보를 토대로 그 대상에 맞는 맞춤형 메시지를 보냈다. 이라크를 때릴 때 원거리에서 이른바 외과적 공격(surgery attack)으로 족집게처럼 목표지점을 타격한 미군의 군사전략을 원용한 셈이었다.
오바마의 미디어 전략은 특히 청년층에 탁월한 효과를 냈다. 오바마는 대선에서 18세에서 29세에 이르는 청년 유권자의 표 66%를 긁어갔다. 청년층 사이에서는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으면 왕따가 될 지경이었다. SNS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청년 세대였기 때문에 그런 결과는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바마 캠프가 전통적인 미디어, 이를테면 신문이나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을 외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민주당 공식 조직을 통해 기존의 전통 미디어에 대한 활동 역시 체계적이고 능동적으로 전개했다. 이런 다우너적인 미디어 전략은 오바마 캠프에 초유의 유색인 대통령이라는 기적을 안겼다.
SNS나 인터넷의 위력은 사실은 2002년 우리나라 대선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선거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정치적 쇼까지 곁들여가며 노무현 후보는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노무현 캠프의 미디어 전략은 파격 그 자체였다. 노 캠프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메이저 신문을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적대적 공세를 취했다. 이건 종래의 미디어 전략으로 보면 일종의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노 캠프는 비주류 미디어를 등에 업고 힘겹지만 그래서 더욱 짜릿한 성공의 축배를 들었다.
노무현 캠프의 선택적인 부정적 미디어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은 여론의 극단적인 양극화 때문이었다. 중간층이 거의 없이 유권자가 대쪽같이 갈린 상황에서 주류 미디어를 적대적으로 몰아붙인 전략은 결과적으로 우호적인 유권자를 응집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분열의 시대에 분열의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민망할 정도로 광주 유권자가 똘똘 뭉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지난 대선은 기본 상황이 2002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안철수 신드롬에서 보듯이 유권자들은 좌우의 극심한 대립에 염증을 느끼며 사회통합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캠프는 2002년에 승리를 안긴 미디어 전략을 고수했다. 문 캠프는 주류 미디어를 철저히 외면했다. 특히 종편 방송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주류 신문사는 유력한 대선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인사차 방문하는 오랜 관행이 깨지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쓰라림은 곧 문재인 후보의 쓰라림으로 이어졌다.
대선에서 참패했는데도 아직 야권은 주류 미디어에 적대적이다. 주류 미디어가 여전히 정치적 편향성의 늪에서 헤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야권의 그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주류 미디어가 정파적이라 해서 주류 미디어를 외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합당한 일일까? 싫어도 싫은 척 하지 않는 태도를 흔히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정치를 하려면 우선 ‘정치적’이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인종차별의 장벽을 깨고 대망을 이룬 데는 오바마 캠프의 특별한 미디어 전략이 한 몫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오바마 캠프는 당시 미국 인구의 55%가 SNS를 이용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면서 예비선거 과정부터 이들 사이트를 적극 공략했다.
오바마 캠프는 사이트에 가입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조직화에 몰두했다. 다양한 그룹의 지도자들과 만나고 컨퍼런스도 열었다. 이들을 자원봉사자로 유도하면서 자율적인 연대활동을 촉구하고 지원했다. 대선 기간에 활동한 300만 명의 자원봉사자 대부분을 SNS를 통해 모집했다.
그러나 오바마 캠프가 전통적인 미디어, 이를테면 신문이나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을 외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민주당 공식 조직을 통해 기존의 전통 미디어에 대한 활동 역시 체계적이고 능동적으로 전개했다. 이런 다우너적인 미디어 전략은 오바마 캠프에 초유의 유색인 대통령이라는 기적을 안겼다.
SNS나 인터넷의 위력은 사실은 2002년 우리나라 대선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선거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정치적 쇼까지 곁들여가며 노무현 후보는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노무현 캠프의 미디어 전략은 파격 그 자체였다. 노 캠프에서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메이저 신문을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적대적 공세를 취했다. 이건 종래의 미디어 전략으로 보면 일종의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노 캠프는 비주류 미디어를 등에 업고 힘겹지만 그래서 더욱 짜릿한 성공의 축배를 들었다.
노무현 캠프의 선택적인 부정적 미디어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은 여론의 극단적인 양극화 때문이었다. 중간층이 거의 없이 유권자가 대쪽같이 갈린 상황에서 주류 미디어를 적대적으로 몰아붙인 전략은 결과적으로 우호적인 유권자를 응집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분열의 시대에 분열의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민망할 정도로 광주 유권자가 똘똘 뭉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지난 대선은 기본 상황이 2002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안철수 신드롬에서 보듯이 유권자들은 좌우의 극심한 대립에 염증을 느끼며 사회통합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캠프는 2002년에 승리를 안긴 미디어 전략을 고수했다. 문 캠프는 주류 미디어를 철저히 외면했다. 특히 종편 방송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주류 신문사는 유력한 대선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인사차 방문하는 오랜 관행이 깨지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쓰라림은 곧 문재인 후보의 쓰라림으로 이어졌다.
대선에서 참패했는데도 아직 야권은 주류 미디어에 적대적이다. 주류 미디어가 여전히 정치적 편향성의 늪에서 헤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야권의 그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주류 미디어가 정파적이라 해서 주류 미디어를 외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합당한 일일까? 싫어도 싫은 척 하지 않는 태도를 흔히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정치를 하려면 우선 ‘정치적’이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