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의 경제멘토링] 협상과 대화의 기본, 역지사지
2013년 03월 15일(금) 00:00 가가
미국 대학의 노사관계대학원에서 단체협상론 강의를 들을 때의 경험이다. 담당 교수는 중간고사에 대신하여 한 기업의 경영실적 자료를 주면서 이를 분석해서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회사의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등의 경영실태를 노조의 입장에서 자세히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최대한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작성하라는 과제였다. 우리는 노조 입장에서 경영실적을 분석해 보고 이익이 많이 났다는 것, 앞으로의 전망도 좋다는 것, 노동자들이 열심히 협조적으로 일했다는 것 등 실적을 부각시켜 최대한의 임금 인상 추정치를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인상 요구안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그 교수는 학기말에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고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이제 입장을 바꾸어 이번에는 회사의 사장이 되어 같은 경영자료를 갖고 지난번에 제출한 노조의 요구안에 반박하는 답변서를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해서 노조에 유리하게 자료를 분석하고 최대한의 임금인상 요구를 했는데, 이제는 똑같은 자료를 갖고 임금인상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과제였다. 같은 사람이 똑같은 자료를 갖고 전혀 다른 논리를 펴라는 것인가? 그러나 시간을 갖고 여러모로 고민해 보니 같은 자료를 같고도 전혀 상반되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경영실태를 갖고도 ‘이익이 많이 났으니 임금을 대폭 올려 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반면에, 정반대로 ‘그래도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인상에 쓸 재원이 없다’는 결론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앙 노동위원회에서 심판과 조정사건을 다루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떤 중소기업의 조정사건을 담당할 때의 일이다. 먼저 노조측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장이 그야말로 악덕 기업주의 표본같이 보였다. 회사 이익이 많이 나도 노조와 한 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고급 승용차구입이나 골프, 해외 출장, 판공비 등으로 사용하고 노조 측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임금인상 재원이 없다고 임금인상에는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노조 측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니 요즘도 이런 사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참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에 사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고 보니 전혀 사정이 달랐다. 사장 입장에서는 회사 영업 활동을 위해서 고급 승용차나 해외 출장비가 필요하고 접대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기업을 유지하고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하느냐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가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노사협상이건 다른 어떤 대화에서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요즘에는 각종 교육에서 역할을 나누어 진행하는 역할게임이 일반화되어 있다.
2000년대에 노동부가 노사분규로 폐업한 수십 개의 회사를 찾아다니며 노사대표를 직접 인터뷰한 사례가 있다. 이미 망한 회사의 사장과 노조 대표를 어렵게 찾아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모두 후회막급이고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는 공멸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성했다. 그런데 이런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그들이 그때 그런 최악의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대화의 부족이었다.
노조는 회사 사장이 어렵다고 했을 때 사장이 항상 하는 엄살인지 알았다는 것이고, 사장은 노조가 회사 입장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노동자 이익만 챙긴다는 생각을 하고 적대감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다면 다 터놓고 이야기했다면 왜 협조를 안 했겠느냐”는 얘기다.
동양의 대화 철학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간단한 원리이지만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라고 한다. 경청(傾聽)은 몸을 기울여 듣는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몸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도 마치 그 한 사람밖에 없다는 듯이 대화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대화뿐만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가 작용한다. 보고서는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상사의 입장에서 쓰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작성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논리와 자기 어휘로만 작성하니 그런 보고서를 읽는 사람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역지사지해서 보고받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무엇이 궁금한지 어떤 내용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그런 내용이 빠지고 자기 일방적 생각만 담은 보고서는 이미 낙제점이다. 역지사지는 대화와 협상의 핵심원칙이 되어야 한다.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노조 측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니 요즘도 이런 사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참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에 사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고 보니 전혀 사정이 달랐다. 사장 입장에서는 회사 영업 활동을 위해서 고급 승용차나 해외 출장비가 필요하고 접대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기업을 유지하고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하느냐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가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노사협상이건 다른 어떤 대화에서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요즘에는 각종 교육에서 역할을 나누어 진행하는 역할게임이 일반화되어 있다.
2000년대에 노동부가 노사분규로 폐업한 수십 개의 회사를 찾아다니며 노사대표를 직접 인터뷰한 사례가 있다. 이미 망한 회사의 사장과 노조 대표를 어렵게 찾아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모두 후회막급이고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는 공멸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성했다. 그런데 이런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그들이 그때 그런 최악의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대화의 부족이었다.
노조는 회사 사장이 어렵다고 했을 때 사장이 항상 하는 엄살인지 알았다는 것이고, 사장은 노조가 회사 입장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노동자 이익만 챙긴다는 생각을 하고 적대감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다면 다 터놓고 이야기했다면 왜 협조를 안 했겠느냐”는 얘기다.
동양의 대화 철학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간단한 원리이지만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라고 한다. 경청(傾聽)은 몸을 기울여 듣는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몸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도 마치 그 한 사람밖에 없다는 듯이 대화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표시하는 것이다.
대화뿐만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가 작용한다. 보고서는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상사의 입장에서 쓰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작성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논리와 자기 어휘로만 작성하니 그런 보고서를 읽는 사람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역지사지해서 보고받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무엇이 궁금한지 어떤 내용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그런 내용이 빠지고 자기 일방적 생각만 담은 보고서는 이미 낙제점이다. 역지사지는 대화와 협상의 핵심원칙이 되어야 한다.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