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간접 선출의 방식으로 바꾼다고 한다. 직선제나 간선제 어느 쪽이 좋은가를 간단히 말할 수는 없는 일인데, 여기에서는 그것을 따져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문화의 한 부분을 상기해보고자 한다.

직선제의 폐단은 선거 과정을 통하여 대학 내에 파벌이 생기고 학문의 이상을 손상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의 하나는 총장이 되는 것을 벼슬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에 있다.

대학의 목적은 흔히 말하듯이 진리 탐구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은 그것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사람인데, 행정직을 맡는 것은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일이다. 이 방향 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교수와 연구는 그것을 위한 여러 뒷받침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총장직을 맡겠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여 이러한 배후의 일에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낸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한 각오는 대학을 정치적으로 바로 잡겠다는 의도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학에서 또는 교육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또는 좋은 일인가? 모든 것이 정치화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치가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치는 선악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의미의 인간행동의 영역이다.

얼마 전 영국 BBC가 트로츠키의 외손자 에스테반 볼코프와 회견을 가졌다. 만년에 스탈린의 정적인 된 트로츠키는 멕시코에 피신하였다가, 결국은 스탈린의 자객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볼코프에 의하면, 멕시코 망명 중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는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대체로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어린 손자를 정치적 화제나 정치로부터 멀리 있게 하려 노력하였다.

그것은 참혹했던 그의 경험 때문이었기도 하겠지만, 정치의 복합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론의 원조의 한 사람인 루소는 아동 교육을 논하면서 1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아동을 정치와 사회로부터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개인적 영예의 다툼이나 절대화된 정치는 대체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싸움으로 나아간다. 또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계략과 법술로써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수가 많다.

또 하나, 이러한 일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 문화에 일어난 또 한 가지 변화이다. 공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어도 일단 그것을 겸허하게 사양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관례였다. 허례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겸허는 성숙한 인격의 표현이고 화평한 사회를 위한 중요한 덕성이었다.

사실 중요한 공적 임무가 맡겨진다고 할 때, 자신의 마음 준비와 능력을 저울질해보고 겸양을 고려하는 것은 윤리와 도덕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특히 학문의 세계에서 그렇다.

정치는 원래부터 조금 더 개인적인 야망과 집단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영역이라고 하겠지만, 정치 풍토에서 이러한 사려가 사라진 것도 한참 된 일이다. 정치에 나선 사람들이 자기를 내세우고 광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도입된 초기만 해도, 선거 포스터에는 “모모 선생을 국회로 보냅시다”라는 말들이 쓰였었다. 본인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일을 맡아달라고 권고한다는 뜻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진리의 수련을 쌓은 사람만이 통치자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난점은 세상일을 맡아달라고 그러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사코 벼슬자리를 원하거나 스스로의 정당성과 역량을 과신하고 자랑하는 사람에게서 참으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봉사를 기대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화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