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2012년이다. 한국도 그렇고 전 세계가 2012년이다. 그러나 일본은 평년 23년이다. 행정부 수반의 공식명칭은 내각총리대신이다. 천황이 바뀌면 연호가 바뀌고, 수상은 천황의 신하인 것이다. 수많은 무사정권을 거쳤지만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15세기 이상 변함없이 천황의 나라다.

그러면, 과연 일본은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인가? 당연히 아니다. 메이지 천황과 전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히로히토 천황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천황은 통치에 있어서 정통성의 상징일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도대체 누가 통치하는가?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므로 수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수상은 통치행위에 있어서 권력자가 아니다.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 중앙집권제를 채택해온 우리 시각으로 보면 일본의 권력구조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사람에게 좀 유치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본다. 일본에서 제일 힘 센 사람이 누구냐고. 자기들도 모른단다. 조금 성의있고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의 입에서는 대략 20∼30명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그 이름들도 정치인은 몇 안 된다.

네덜란드의 언론인 울프렌은 일본의 권력구조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통해 일본에는 절대권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각 분야의 복수의 관리자들에 의해 그때 그때 관리될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 헌법은, 일본은 의원내각제의 민주주의국가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연히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입법권은 선거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 양원(중의원, 참의원)에 있다. 따라서 국회는 법적으로는 모든 것의 결재자이어야 하지만, 일본의 국회는 그렇지 못하다.

양원으로부터 위임받은 행정부로서의 내각이 만들어지고, 그 정부의 수장이 내각 총리 대신이다. 따라서 행정권의 모든 결재자는 내각총리대신 즉 수상이어야 하지만, 일본의 수상은 그와 같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

국회와 수상이 국가의 중핵으로서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권력집단으로 관료와 재계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들에게도 궁극적인 권력은 없다. 치안과 국방을 담당하는 경찰과 자위대도 존재하지만 역할과 한계가 분명하다. 이밖에도 농협, 일교조, 노동조합, 법조계, 렌고(노동조합) 등의 거대 압력단체도 들 수 있지만, 그들 또한 압력단체로서의 지분은 인정되지만 권력을 갖지는 못한다.

일본 사회는 어떤 절대 권력자에 의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는 일본의 전쟁책임을 강조한 사상가 마루야마의 말처럼 ‘무책임의 체제’라 함이 옳을 듯하다. 사실, 무라야마 전 수상은 전쟁책임을 상당 부분 인정한 바 있지만,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에는 역사의 과오를 ‘절대적’으로 사죄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이 없다. 다만, 보수우파와 진보와 중도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일본의 정치 현실이다.

문제는 독도로 촉발된 작금의 한일관계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및 일왕 관련 발언은 우리 국민에게 통쾌함은 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 할 일본의 보수우파에게 독도의 분쟁지역화와 이를 통한 세력 결집이라는 명분과 힘을 실어준 반면, 합리적인 사고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노력해온 세력에게는 그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버린 셈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매체이면서 일본의 전쟁책임에 있어서 보수우파를 질책해 온 아사히 신문마저도 이 대통령의 일왕 관련 발언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일본 내의 합리적 세력을 응원하고, 역사의식이 결여된 보수우파의 준동에 빌미가 될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다.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