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의 ‘영희와 철수’ 이후로 ‘철수’라는 이름이 이렇게 우리 사회를 달군 적이 있었던가?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안철수를 향해 본격적으로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가 요 근래 한 것이라곤, 책 한 권 내고,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한 번 출연한 것이 고작인데, 정치 밥만 수십 년씩 먹은 직업 정치인들이 허둥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안쓰런 생각마저 든다.

사실, 안철수가 말하는 것들은 특별한 게 아니다.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 후보들 주장의 교집합을 구하면, 어차피 정의로운 복지국가 건설로 모아진다. 집권 여당의 박근혜 후보 공약의 핵심 또한 경제민주화를 통한 경제정의 실현과 복지국가 구현 아니던가.

그렇다면, 안철수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국민을 사로잡는가. 우리는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경험한다. 똑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의 말은 깊은 감동을 주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답은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의 가치관에 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엘리엇 아론슨은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전문가나 신뢰할만한 개인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 사회가 복잡해지고 불신이 커질수록 해당 전문가나 믿을 수 있는 개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은 긴 설명이 구차하다.

둘째, 그 사람의 언행이 그 자신의 이익과 배치될 때, 특히 희생이 동반될 때 신뢰성이 극대화된다는 것.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예수가 그렇고 석가모니가 그렇다. 그 희생에 바탕한 신뢰는 기독교와 불교라는 종교가 된다. 체 게바라가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이유 역시 의사라는 안정된 삶을 박차고 고통받는 남미의 민중들을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영향을 끼치려하는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바꿔 말하면, 사람들은 상대의 언행에서 의도의 순수성을 확인했을 때 더욱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것은 착한 정치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라는 안정된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기약없는 벤처 기업가의 길을 선택했다. 여타 기업CEO들이 기업의 최대의 미덕은 이윤추구라고 외칠 때, 그는, 백신을 개발해 민간에 무료로 배포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안철수는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상들이 여기 저기서 망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삶의 막다른 길목에 내몰린 이들이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손을 내밀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집단우울증에 빠진 이 땅의 젊은이들을 향해 따스한 가슴으로 두 팔을 벌려 안아 주었다.

그는 당연히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과 삶의 진실과 희망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소통은 상대의 고통을 같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올림픽이 한창이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하는 모습들이 자랑스럽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의 청량제이기도 하다. 금메달 숫자만으로는 세계 3위라니 대단한 선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런 분야에서도 금메달 국가다. 자살률과 저 출산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몇 년간 부동의 1위다. ‘자살률 최고’는 현재가 없음을 의미하고, ‘출산율 최저’는 미래가 없음을 의미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다.

안철수 신드롬이라 한다.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해석을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지금껏 ‘더 큰 대한민국, 더 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앞으로 전진!’만 외쳐 왔던 성장지상주의에 우리들이 많이 지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로 상징되는 착하고 따뜻한 리더십을 통해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 싶은 것이 진정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