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난 1924년 11월, 일본에서는 기상천외한 책 한권이 출판된다. 오타니베(小谷部)라는 목사가 쓴 책으로, 몽골제국을 건설한 징기즈칸이 실은 일본인이라는 내용의 책이다.

전 세계를 정복한 불세출의 영웅 징기즈칸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오타니베의 주장에 일본사회는 열광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 책은 일본 근대 출판사상 미증유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일본 무사정권의 태동기인 12세기말 미나모토 요시츠네(源義經)라는 출중한 무장이 있었는데, 일본사는 그를 혁혁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형과 대립한 끝에 결국은 억울한 최후를 맞는 비운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타니베는 요시츠네의 최후를 자결로 결론지은 정사의 기록을 전면 부정하고 나선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요시츠네는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홋카이도로 몸을 피했고, 훗날 몽골로 건너가 몽골제국을 건설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징기즈칸이라는 것이다.

오타니베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요시츠네가 죽음을 면해 홋카이도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민간전설이 존재한다는 것, 징기스칸이 활약한 시기가 요시츠네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시기 이후라는 것, 그리고 징기스칸과 관련된 어휘들의 발음이 요시츠네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것 등등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본다면 거의 ‘전설따라 삼천리’ 수준의 황당한 이야기지만 당시 일본사회는 이 책에 열광했다. 물론 학자들은 이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지만 달아 오른 대중들의 열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자에게는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감동의 편지가 쇄도 했다. 이에 더욱 신바람이 난 오타니베는 급기야 일본인의 기원은 유태인과 맥을 같이 한다는 내용의 책까지 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당시 일본사회의 광기의 배경에는 메이지(明治)정부 이래 집요하게 진행되어 온 왜곡된 민족주의 교육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칭화대의 모 교수가 중국인의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중국정부에 제안했다는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한 역사 프로젝트, 이름하여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은 동북공정·서남공정·서북공정의 상위 개념이다.

이 역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중화문명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를 제치고 1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류 최고의 문명으로 부상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철저하게 편협한 자국 중심적 사관에 기초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 중국 국가문물국은 고고학 조사 결과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1196.18㎞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만리장성 길이는 명나라 때를 기준으로 6352㎞가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보다도 3배가 훨씬 넘게 늘어났다.

그야말로 엿장수 엿가락 늘리기 수준이다. 이번에 늘어난 만리장성 유적지에 새롭게 포함된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은 고구려와 발해가 위치했던 지역이다.

만리장성 늘리기는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간주해온 동북공정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중국의 자랑스런 유산이자 인류의 유산인 만리장성이 무리한 자국역사 확장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편협한 역사인식에 기인하는 바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 더불어 G2 국가의 한 축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책무가 크다.

민족주의가 과잉상태에 이르면, 배타와 폐쇄의 벽에 갖히고 만다는 것은 역사의 상식이다. 자신의 존재나 문화를 알리고 싶다면 상대방의 존재와 문화도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대개 비슷하다. 자기만 최고라고 떠들어대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친구거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