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며 웃자고 하는 이야기. 한국어를 공부하는 어느 외국인이 묻는다. 왜 한국인은 모든 것을 먹어버리냐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한국사람은 “나이를 먹다, 마음을 먹다, 더위를 먹다, 욕을 먹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외국인이 다시 묻는다. 한국인은 개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욕설을 한다든지 할 때는 왜 앞에 ‘개’를 붙이는지 궁금하단다. 그 친구 대답할 틈도 없이 또 묻는다.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하이브리드카’는 한국어로 옮기면 ‘잡종차’가 되는데 ‘잡종’도 욕할 때 쓰는 말이 맞느냐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우리말에 ‘雜’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것 중에 좋은 어감으로 쓰이는 말이 있는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잡상인, 잡동사니, 잡념 정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상대방에게 ‘잡×, 잡×’을 입에 담으려면 일전은 각오해야 한다. 사전적으로, ‘유전형질이 서로 다른 부모의 교배에 의해 생긴 자손’ 이라는 의미를 갖는 ‘잡종’이라는 말 역시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차별어이자 모욕적인 말이다.

그러나, 생물학에서 잡종이라는 말의 위상은 사뭇 다르다. 생물학에 ‘잡종강세’(雜種强勢)라는 말이 있다. 새로 태어난 잡종은 순수종인 부모보다 적응력이나, 생식력, 크기에 있어서 반드시 뛰어나다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즐기는 바나나, 땅콩, 옥수수, 장미, 커피 등이 자연적 혹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잡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끌린다. 반대로 꼼꼼하고 조용한 사람은 호탕하고 털털한 사람에게 끌린다.

우리는 왜 자신에게는 없는 면을 갖춘 색다른 상대에게 끌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비슷한 유전자끼리의 결합은 열등한 후손을 낳는다는 생물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생물학에서만큼은 잡종강세는 진리인 셈이다.

세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연속이다. 세계 도처에서 인종간, 국가간, 종교간 대립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노사간 대립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립과 갈등이라는 개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인류의 역사는 넓게 보면 대립과 갈등의 역사였다. 인류는 그 대립과 갈등 속에서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그렇다.

선거가 코앞이다. 늘 그렇듯이 대립과 갈등은 선거를 전후하여 최고조에 이른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대립의 극단은 당연히 비극이다. 중요한 것은 그 대립이 늘 비극적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대립이 생기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의 장점을 취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 가는 이른바 상호간의 ‘잡종화’가 진행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령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의 한 명문 여자대학이 전통을 고집하는 동문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학생을 받아들여 남녀공학체제로 전환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성중심사회를 온몸으로 체험한 남학생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우받는 세상은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이러한 인간관을 가진 졸업생들은 특히 여성 근로자가 많은 직종에서 인기 만점 사원이 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직장인상을 창출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여자대학과 공학체제의 대립에서 태어난 ‘잡종’ 현상인 셈이다. 이처럼 대립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늘 생각하듯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창출될 수 있다는 긍정적 요소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드가 같은 사람끼리 모인 사회는 편하기는 하지만 종국에는 퇴화하기 마련이다. 건강한 대립은 건강한 ‘잡종문화’의 토양이다. ‘대립’은 결코 ‘파멸’과 동의어가 아니다.

〈김규열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