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1년 전 원전 폭발로 죽음의 땅으로 변한 후쿠시마는 일본 근대사 초입에 이미 비극의 역사를 경험한다.

이야기는 한 세기를 훌쩍 뛰어 넘어 메이지 신정부 출범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까지 에도막부를 지키려 했던 후쿠시마는 신정부군에 결사항전했다. 이에 야마구치 하기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정부군이 진압에 나서는데 그 잔혹함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악취가 진동하는 시신을 유족들이 매장하는 것 자체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잔인무도한 진압이었다.

역사의 패자로 전락한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북지역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계속된 상대적 박탈감에 후쿠시마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통한의 역사를 뒤로하고 대규모 원전시설 유치에 나선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그 시절에는 그러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는 결과적으로 일본 근대화의 최대의 희생양인 셈이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는 리스크 사회라는 사실이다. 충분한 임상시험을 거치치 않은 신약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은 리스크가 따른다. 그러나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투약을 미룬다면 환자의 생명 또한 보장할 수 없는 리스크에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헤지 펀드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기대 만큼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위험이 두려워 자금을 놀린다면 자본의 속성인 이윤 창출 기능을 포기해야 하는 리스크가 따른다.

현대사회는 리스크를 적게 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리스크인 것이다. 안전이 위험의 함수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현대사회에 있어서 리스크의 역설인 셈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1986년)에서 리스크 사회의 도래를 예견한 바 있다. ‘풍요로운 사회’를 지나치게 추구해온 역사는 반드시 리스크 사회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산업사회가 내건 목표는 “나는 춥고 배고프다”라는 물질적 빈곤의 개선이었다. 빈곤의 극복이었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인간 호르몬 변형, 그리고 방사선 누출 문제 등 예기치 못한 부산물이 등장하게 된다.

“나는 춥고 배고프다”가 어느 틈엔가 “나는 불안하다”로 바뀌었다. 빈곤을 공유하는 시대에서 불안을 공유하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벡은 현대 리스크 사회의 특징을 다음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리스크를 공간적 시간상으로 한정할 수 없는 한정불능, 둘째, 다양한 리스크의 책임을 특정인 혹은 조직에 물을 수 없는 귀책불능, 셋째, 대규모 리스크 피해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 불가능한 보상불능이 그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사고와 관련해서 문책당한 사람을 보지 못했고 피해에 대한 보상이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불행하게도 후쿠시마 원전은 울리히 벡이 상정한 현대사회 리스크의 특징을 비극적으로 시현해준 셈이다.

오랫동안 반원전 운동을 주도해 온 일본의 한 시민운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원자력발전은 핵반응이라고 하는 비뉴튼적 현상을 뉴튼 물리학에 기초한 기술로 제어하려 하는 원리적으로 모순되는 위험천만한 곡예이며 스캔들이다.”

이 분야에 과문한지라 반원전, 찬원전 주장에 쉽게 동조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검증되지 않은 과학적 합리성을 내세운 성장론이 혼자 활보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념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헌신 없는 숭배’ ‘인간성 없는 과학’. 마하트마 간디의 묘비에 새겨진 인간의 7대 죄악이다.

〈김규열 광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