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를 이용하여 부안군에 있는 위도를 다녀왔다. 해마다 정월 초사흘이면 위도 대리에서 열리는 원당제라는 민속행사를 보기 위해서이다. 때마침 휘몰아친 서해안 한파로 추위에 떨어야했다. 대리의 원당제는 원당제보다도 ‘위도 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이 ‘위도 띠뱃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2-다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민속행사이다. 마을에서 가까운 당제봉 정상에 위치한 원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마지막에 띠로 만든 작은 배를 바다로 끌고나가 띄어 보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당제봉 원당 안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보장해주는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다. 양쪽 문에 문수영대신이 그려져 있고, 정면 및 오른쪽 벽면에 산신, 장군, 신령, 본당부인, 애기씨, 옥저부인을 그린 그림이 차례대로 걸려있다. 이들 신 저마다 입으로 전해지는 마을의 역사와 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일찍이 이 마을 사람들은 이들 신에 의지하여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였을 터이다. 현재 이들 신은 마을 사람들의 삶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정월대보름 전날에는 가족과 함께 광주 남구 칠석마을에서 열리는 고싸움놀이 전야제를 보고 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칠석마을 고싸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 식후공개행사에 초대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날 전야제 행사의 볼거리는 무엇보다도 달집태우기가 아니었나 싶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새해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달집에 걸어두고, 달집의 불길이 높이 치솟는 것을 지켜보며 하늘 높이 걸린 달을 향해 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이 순간은 신과 인간의 교류의 시간이며, 달집이 놓인 광장은 신과 인간의 합일의 공간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과 인간의 경건한 시공간이다.

생각해보면,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늘 신과 함께 살아왔다. 집안 공간만하더라도 터주신을 비롯하여 변소에는 측간신, 부엌에는 조왕신, 외양간에는 외양간신, 방에는 성주신을 모셨다. 집밖으로 나가면 마을의 공동우물에 우물신, 마을 어귀의 장승, 그리고 당산나무에는 당신 할아버지와 당신 할머니를 모셨다. 이들 신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생활의 일부이자 생활 그 자체였다. 인생의례를 보더라도, 출생, 이레, 세이레, 돌, 생일, 성인식, 결혼, 환갑,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통해서 늘 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신에게 감사하며 살아왔다.

우리 조상들은 이들 신과의 교류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 공동체 삶 속에서 인간에 대한 도리,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배우며 자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주변에서 우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신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아니 우리 스스로 그 신들을 떠나보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지금도 그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얼마나 신이 밀착되어 있는 지를 느꼈을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는 ‘신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한국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공동체적 삶이 급속도로 해체되면서, 그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사회병리현상이 매우 두드러졌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멀어지고 인간소외가 심각해졌다. 가족 사이의 대화단절, 학교폭력의 난무, 직장에서의 소통부재는 우려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크나큰 위기에 직면해있다.

근대 이전에 비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 각박해지고 불행해졌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혹시라도 그 원인이 ‘신을 잃어버린 시대’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하루빨리 ‘잃어버린 신’을 되찾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잃어버린 신’을 되찾는 일은 기성종교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이 경우의 신이란, 인간성 회복이자 생명사상이며 자연에 대한 외경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그 많던 신들은 어디로 다 갔을까.

〈김용의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