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상무지구 5·18자유공원 한켠엔 반달모양의 조형물이 서있다. 그 벽면에는 북두칠성 모양을 이루며 일곱 명의 얼굴을 새긴 동판이 박혀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들불 7열사’로 부른다.

들불은 1978년 설립된 광주지역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을 일컫는다. 그들은 80년 5·18항쟁 당시 투사회보를 만들어 배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열혈청년이었다. 그런데 그후 20년 동안 운명처럼 한 명씩 우리 곁을 떠나더니 그 수가 일곱 명에 이른 것이다.

삶이 팍팍하고 허기질 때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삶의 방향과 좌표를 되찾고 확인하곤 한다. 2006년 부터는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기위해 열사들의 이름으로 7개 분야에 걸쳐 매년 들불상을 제정하고 한 사람씩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올해가 마지막 해로서 오는 5월 중에 문화운동 분야에서 수상자가 결정될 것이다. 그러니까 2012년 들불상은 박효선상이 된다.

박효선은 누구인가. 2004년에 KBS 1TV ‘인물현대사’에서 집중조명을 하기도 했던 터이지만 그는 오월광대 그 자체였다. 순수한 열정과 헌신을 온통 80년 오월에 쏟아부었다. 5·18항쟁 당시 도청지도부 홍보부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도피생활 후 84년 극단 ‘토박이’를 창단한다. 5·18전문극단으로서 5·18의 진실을 연극으로 만들어 세상을 향해 내놓기 위해서다.

그 중 대표작 ‘금희의 오월’과 ‘모란꽃’은 미국과 캐나다 7대 도시를 순회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편의 5월 다큐멘터리를 쓰고 출연했으며 생애 마지막 작품도 오월 비디오영화 ‘레드 브릭’이다.

박효선이 지향했던 순결한 뜨거움을 생각할 때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다. 윤이상은 당시 독일에서 5·18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면서 두 편의 작품을 작곡했다. 소프라노와 실내 앙상블을 위한 ‘밤이여 나뉘어라’와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이다.

‘광주여 영원히!’를 집필하는 동안 분노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 그는 당시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광주라는 이름은 모든 민중의 심장에 새겨져 영원히 남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1984년에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현대음악제에서 독일 대표작으로 선출되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연주되었다.

윤이상의 마지막 작품은 교향시 ‘화염속의 천사’와 ‘에필로그’였다.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분신 자살한 학생들의 고귀한 죽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는 이 청춘들을 위해서 진혼곡이라도 쓰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1995년 5월 일본 도쿄에서 초연됐고 타계하기 얼마 전 베를린음악제의 일환으로 열린 윤이상 탄생 78주년 기념연주회에서도 연주되었다.

한반도의 모든 질곡의 원인을 민족분단에서 찾은 그는 음악을 통한 평화통일운동에 전력을 다했으며, 고향 통영에서는 그를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박효선과 윤이상은 무엇보다 조국과 오월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갖고 작품을 통해 자신들을 진솔하게 성찰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할 것이다. 이들은 예술과 삶과 철학을 일치시킨 사람들이다.

이들의 선구자적인 예술적 성취 이후 광주 오월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일어서는 사람들’, ‘봄날’, ‘화려한 휴가’, ‘언젠가 봄날에’, ‘자스민 광주’, ‘알을 품은 도시’등이 떠오른다. 영화나 오페라, 무용 그리고 많은 문학작품들도 있다. 올해도 오월정신을 다룬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질 것이다. 광주의 정체성이 담긴 대표 브랜드공연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통영국제음악제는 세계 곳곳에서 음악인들이 모여 세계적인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을 기억하고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을 배출하는 산실이 되었다. 그런데 오월광대 박효선은 너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가 떠난지 14년이 흘렀는데 그 세월의 무게만큼 우리 기억속에서 멀어졌다.

광주연극인들이 힘을 모아 그를 추모하는 ‘박효선 연극제’를 열 것을 제안한다. 그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역사의 들불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박선정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