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야생동물들에게 고난의 계절이다. 추위와 먹이부족을 극복해야하고, 동시에 인간이 저지르는 잔인한 불법포획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지리산 일원에서는 동물보호단체와 관계당국이 무려 3천 개가 넘는 올무와 덫을 발견하여 제거하였다는 소식이다. 많은 혈세를 투입하여 멸종동물 복원차원에서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들 중 다섯 마리도 그동안 바로 이러한 올무에 걸려 살해당했다고 한다. 야생의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불법포획과 독극물을 사용하는 따위의 무차별한 동물사냥이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은 ‘동물복지’후진국임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곰의 쓸개가 몸에 좋다 하여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관을 꼽아 쓸개즙을 빨아먹는 잘못된 보신문화가 사라지지 않았고, 뱀들의 통로에 수백 미터의 그물을 쳐 모든 뱀의 씨를 말리는 생태 파괴적 사냥 따위가 여전히 성행하며, 매년 10만 마리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기동물의 숫자 등등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의회는 2002년 6월21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할 의무를 명시한 헌법조항에 동물도 추가시키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여파로 독일에서는 동물복지를 위한 법안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인간과 거의 같은 DNA구조를 갖고 있는 침팬지는 인간과 동일한 생명권을 누리도록 했으며, 가축의 경우에도 양계장이나 비육우의 시설과 사육방식에 ‘동물권’의 보장을 철저히 고려토록 하고 있다. 물론 동물복지 선진국에서의 이와 같은 변화는 동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과 관련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우리는 동물은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라 생각해 왔다. 그러나 1975년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이라는 그의 책에서 동물도 사랑, 슬픔, 고통, 자존심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사고가 가능한 생명체라고 주장한 이래 동물도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한 예로 열렬한 동물보호주의자 제프리 메이슨과 수전 매카시가 함께 쓴 책 ‘코끼리가 울고 있을 때’를 보면 동물도 사람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을 갖고 있음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케냐의 코끼리 고아원에 수용된 새끼코끼리들은 밤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잠을 깨곤 하는데, 이는 그들이 고아원에 들어오기 전 밀렵꾼들에게 부모가 학살당하고 상아가 뽑히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 밤에 악몽을 꾸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침팬지는 황혼녘의 아름다운 광경을 꼬박 15분 동안 지켜보는 모습이 관찰된 바 있다.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영장류에 속하는 침팬지나 고릴라는 300개 이상의 수화표시를 사용하여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례들의 축적은 동물의 천부적 권리도 박탈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인간중심의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공존이 모색돼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동물권리’란 개념이 생소하고, 여전히 미진한 동물보호관련법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동물의 숫자는 매년 늘어나고 생태계의 미래를 말해주는 생물다양성이 점차 위협받고 있다.

동물이 사라진 생태계는 병든 세계이다. 이제 동물과 식물,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생태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실로 새로운 가치와 윤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겨울이 야생동물들에게 고난의 계절이 아니고, 한국이 야생동물들에게 고난의 땅이 아니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협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전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