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아내한테 용돈을 달라고 조른다.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서 친구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빼빼로 데이’는 그 어느 해보다 극성스럽다. 2011년 11월 11일. 숫자 1이 6개 겹친다고 해서 천년에 한 번 찾아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그 과자를 만드는 제과회사의 ‘데이 마케팅’에서 비롯되었다. 제과회사에서는 천년에 한 번 찾아오는 날을 놓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우정을 전하라는 광고가 요란스럽다.

한편, 일부에서 ‘빼빼로 데이’의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적도 분명치 않은 기념일을 만든 제과회사의 상술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밀레니엄’이란 표현을 문제로 삼아, 1111년 11월 11일이야말로 진정한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로, 그날은 이미 지나갔다고 지적한다.

11월 11일이 ‘농업인의 날’임을 상기시키며, 이 날을 ‘빼빼로 데이’가 아닌 ‘가래떡 데이’로 삼자는 이도 있다. 11월 11일은 한자로 土자가 겹치는 날(十一월 十一일)로, 농민들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취지를 살려 1996년부터 정부에서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그런데 ‘빼빼로 데이’가 일본의 제과회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빼빼로 데이’의 기원은 일본에서 확인된다. 일본에는 한국의 빼빼로와 비슷한 과자로 프릿츠(Pretz)와 폿키(Pocky)가 있다. 둘 다 일본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에자키 그리코(Ezaki Glico)라는 제과회사에서 만드는 과자이다.

프릿츠는 1963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막대 모양의 과자다. 그리고 폿키는 이 프릿츠에 초콜릿을 입힌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폿키’라는 과자 이름은 막대 모양의 물건을 부러뜨릴 때에 나는 소리 ‘폿킨(pokkin)’이라는 일본어 의성어에서 착안하였다고 한다.

에자키 그리코 제과회사에서는 판촉활동의 일환으로 1999년에 11월 11일을 ‘폿키와 프릿츠의 날’로 지정했다. 11월 11일을 선택한 이유는 두 과자를 나란히 늘어놓았을 때에 1111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다운 발상이다.

일본에서도 11월 11일 이 날은 ‘폿키와 프릿츠의 날’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념일과 겹친다. 즉 일본에서 11월 11일은 ‘연어(?)의 날’이기도 하다. 이 ‘연어의 날’은 일본에서 어업과 관련된 몇 군데 지방자치단체 및 어시장이 주동하여 임의로 제정하였다.

11월 11일을 선택한 이유가 흥미롭다. 연어를 뜻하는 한자(?) 오른편을 나누면 十一十一이 되기 때문이란다. 이는 한국에서 ‘농업인의 날’을 11월 11일로 지정한 것과 똑같은 발상인 셈이다.

11월 11일. 한국의 ‘빼빼로 데이’와 ‘농업인의 날’, 그리고 일본의 ‘폿키와 프릿츠의 날’과 ‘연어의 날’.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닮아있다. 이 날 한일 양국에서 제과회사의 상술이 난무하는가 하면, 또 한 편에서는 자연을 생활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한국에서 11월 11일은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다가 처음으로 알았다.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빼빼로 데이’는 알았으면서 이 날이 ‘지체장애인의 날’이라는 사실은 몰랐다니. ‘지체장애인의 날’은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서 숫자 1처럼 꿋꿋하게 일어서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올해로 11주년을 맞이했다.

연구실 책상 위에 학생들이 선물한 빼빼로 과자 몇 개가 놓여 있다. 그 과자를 바라보며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 이전에 ‘농업인의 날’이자 ‘지체장애인의 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더불어 우리 딸아이가 친구들과 빼빼로 과자를 주고 받으며, 이 날이 ‘빼빼로 데이’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라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김용의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