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깨끗이 쓰기와 신뢰사회
2011년 10월 24일(월) 00:00 가가
남태평양의 얍(Yap)이라는 섬에서는 과거 바퀴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를 화폐로 사용했다. 그러나 돌 화폐가 너무 크고 무거워 상거래를 하더라도 운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돌 화폐는 그 자리에 두고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서로 인정하면서 거래를 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꺼내기 어려운 돌 화폐에 대해서도 서로가 존재를 인정하고 거래에 이용하기도 했다. 사회 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례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보관 및 운반이 어려운 실물화폐 대신에 금, 은과 같은 귀금속이 화폐로 사용됐다. 그러나 화폐의 주조권을 가지게 된 일부 국가에서는 금, 은의 순도를 낮춰 주화를 제조하는 방법으로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16세기 말 토마스 그래샴이라는 영국의 금융가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남겼다. 순도가 낮은 나쁜 돈이 순도가 높은 좋은 돈을 쫓아낸다는 의미이다. 돈이 신뢰를 얻으려면 돈을 만드는 당국의 신뢰성 역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한편 금화나 은화의 가장자리를 몰래 깎아내어 이득을 보려는 현상도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화의 가장자리에 깔쭉깔쭉한 톱니모양을 새겨놓기 시작하였는데, 현재 통용되는 100원화나 500원화의 가장자리가 우둘투둘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고안된 역사적 산물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을 이용하는 오늘날, 상호 신뢰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할 수 있다. 국가 간 교역규모가 확대되면서 화폐로서의 금, 은의 공급에 한계가 있어 지폐를 이용하게 됐다. 지폐는 귀금속과는 달리 본원가치가 거의 없다. 따라서 지폐가 화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화폐는 경제에 있어 혈액과 같다. 경제에 주입되는 혈액은 신선해야 한다. 위조되고 변조된 화폐는 우리 몸에 침투된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혈관을 돌면서 경제를 병들게 할 것이다. 중앙은행은 화폐 위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새로운 첨단기술을 계속 도입하고 있다. 숨은 그림, 부분 노출 은선, 홀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발견된 위조지폐는 해마다 줄어들고는 있으나, 작년 한 해만 해도 만 여장이나 발견되었다. 최근 이러한 위변조 화폐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이 부각되어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위변조 화폐를 집중 관리토록 한국은행법이 개정되었다. 앞으로 국가정보원,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협조를 얻어 위폐 유통 방지를 위한 활동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돈은 돌고 돈다. 돈이 경제의 혈관을 잘 돌려면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돈이 돌다가 더러워 못쓰게 되면 한국은행에 되돌아온다. 수명이 다한 지폐의 량이 작년 한 해만 해도 400여t에 이른다. 과거보다는 크게 줄었다고는 하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약 5배의 높이가 되는 규모다.
돈이 부족하게 되면 한국은행은 새 돈을 만들어 공급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새 돈을 만드는 데 한 해 천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지폐의 소재는 종이가 아닌 100% 순면이다. 원면을 해외에서 수입하다 보니 돈을 만드는 데에도 외화가 유출되는 셈이다. 동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0원화, 100원화, 500원화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구리, 니켈, 알루미늄 등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한다.
사실 일부 동전의 경우 액면 값 보다 만드는 값이 더 높다. 새 동전을 만들면 만들수록 한국은행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를 악용하여 최근 금속 원자재 가격이 오르자 동전을 돈으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에 대한 처벌 법규가 없었는데, 최근 한국은행법이 국회에서 개정되면서 ‘주화 훼손 금지’ 조항이 신설됐다.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융해·압착·분쇄한 경우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 조항이 생긴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돈을 사랑하고 아끼자’라고 부탁하고 싶다. 돈에 탐욕을 가지고 아껴서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깨끗이 휴대하고 사용하여, 화폐 폐기로 인한 국민적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신뢰사회를 만드는 데 ‘돈 깨끗이 쓰기’가 그 출발선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장택규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장〉
어떤 경우에는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꺼내기 어려운 돌 화폐에 대해서도 서로가 존재를 인정하고 거래에 이용하기도 했다. 사회 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례이다.
16세기 말 토마스 그래샴이라는 영국의 금융가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을 남겼다. 순도가 낮은 나쁜 돈이 순도가 높은 좋은 돈을 쫓아낸다는 의미이다. 돈이 신뢰를 얻으려면 돈을 만드는 당국의 신뢰성 역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한편 금화나 은화의 가장자리를 몰래 깎아내어 이득을 보려는 현상도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화의 가장자리에 깔쭉깔쭉한 톱니모양을 새겨놓기 시작하였는데, 현재 통용되는 100원화나 500원화의 가장자리가 우둘투둘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고안된 역사적 산물이다.
국내에서 발견된 위조지폐는 해마다 줄어들고는 있으나, 작년 한 해만 해도 만 여장이나 발견되었다. 최근 이러한 위변조 화폐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이 부각되어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위변조 화폐를 집중 관리토록 한국은행법이 개정되었다. 앞으로 국가정보원,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협조를 얻어 위폐 유통 방지를 위한 활동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돈은 돌고 돈다. 돈이 경제의 혈관을 잘 돌려면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돈이 돌다가 더러워 못쓰게 되면 한국은행에 되돌아온다. 수명이 다한 지폐의 량이 작년 한 해만 해도 400여t에 이른다. 과거보다는 크게 줄었다고는 하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약 5배의 높이가 되는 규모다.
돈이 부족하게 되면 한국은행은 새 돈을 만들어 공급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새 돈을 만드는 데 한 해 천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지폐의 소재는 종이가 아닌 100% 순면이다. 원면을 해외에서 수입하다 보니 돈을 만드는 데에도 외화가 유출되는 셈이다. 동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0원화, 100원화, 500원화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구리, 니켈, 알루미늄 등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한다.
사실 일부 동전의 경우 액면 값 보다 만드는 값이 더 높다. 새 동전을 만들면 만들수록 한국은행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를 악용하여 최근 금속 원자재 가격이 오르자 동전을 돈으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에 대한 처벌 법규가 없었는데, 최근 한국은행법이 국회에서 개정되면서 ‘주화 훼손 금지’ 조항이 신설됐다.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융해·압착·분쇄한 경우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 조항이 생긴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돈을 사랑하고 아끼자’라고 부탁하고 싶다. 돈에 탐욕을 가지고 아껴서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을 깨끗이 휴대하고 사용하여, 화폐 폐기로 인한 국민적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신뢰사회를 만드는 데 ‘돈 깨끗이 쓰기’가 그 출발선이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장택규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