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김현승과 통영의 유치환
2011년 07월 18일(월) 00:00 가가
얼마 전 제주문화포럼 회원들이 남도 문인들의 자취를 찾아 바다를 건너왔다. 해남 땅 황토 빛 논두렁 길을 걸어 찾은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서 제주 시민들은 낮은 목소리로 시인의 시를 읊조렸다. 김 시인의 집에서 산 하나를 넘어 찾은 고정희 시인의 방은 그녀의 정갈한 생활 모습이 생전 그대로 보존되어 모두들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소설가 이청준이 잠들어 있는, 바다가 보이는 장흥의 낮은 들녘을 찾은 날 짙은 바다 내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 어귀 느티나무 아래서 소설가의 오랜 친구로부터 이청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청준의 무덤을 찾을 때는 낮은 들녘으로 바닷바람이 순간 거세게 불어왔다.
마치 축제의 현장처럼 벌교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는 그 생생한 기록과 규모에 놀랐고 ‘부용산’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을 땐 남도의 또 다른 한을 가슴에 담게 되었다.
하지만, 제주민들이 이번 기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곳은 무진 광주였다.
의향과 예향이라고 오래전부터 불리며 근현대사의 중요한 기로마다 언제나 진실의 편에서 역사를 주도했고 뛰어난 예술인들을 배출했던 광주기행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필자는 광주 기행의 안내인 역을 맡게 되면서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광주의 정신을 감동으로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어떻게 연결해 보여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스러웠다.
사전 조사를 해온 회원들은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한국적 인상주의의 선각자 오지호, 현대 광주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다형 김현승, 국창 임방울 선생등의 자취를 찾아보고 그들의 예술혼을 만나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 중 반듯하게 그들의 예술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의재 미술관 뿐이었다.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다형 김현승의 자취는 무등산과 호남신학대에 세워진 시비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다형이 떠나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 하나 없는 상태며 화가 오지호의 걸작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미술관. 그리고 국창 임방울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 및 상설공연장도 찾을 수 없어 마음속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정율성·천경자·임직순·박용철 등 광주가 사랑했던 당대의 뛰어난 예술인들의 정신을 만날 수 있는 미술·문학 기념관이 곳곳에 있었다면 외지인들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아 이래서 광주가 예술의 도시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제임스 조이스가 조국 아일랜드 더블린에 살면서 쓴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까지 속속들이 고발하여 고향 사람들로부터 모진 협박과 비난을 피해 취리히로 망명한 후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더블린은 ‘조이스 산업’으로 일컬어질 만큼 조이스가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 가우디, 화가 피카소, 후앙 미로를 배출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배출한 위대한 예술가의 자취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무릇 진정한 예술의 도시란 그동안 배출된 뛰어난 예술가의 혼과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는 현대적 산물이 조화를 이룰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광주 예술혼의 바탕이 되는 정신을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고, 많은 작품의 모티브를 주었던 남광주역사가 사라진 것처럼 이미 무언가를 잃어버린 다음에 다시 찾는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다.
제주문화포럼 회원들은 5·18 광주 민주화 묘역을 참배하고 무등산과 의재 미술관에 들른 후 저녁에는 광주 한 식당에서 남도 창을 듣고 광주의 가객이 부르는 부용산 노래에 흠뻑 취해 숙소로 돌아갔다. 필자는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가슴속에 광주의 정을 오래도록 새기기를 기원했다.
더불어 통영 유치환 문학관을 찾았을 때 필자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청마 유치환 시인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접하고 흠뻑 감동받았던 것처럼, 내 고향 광주에서도 존경하는 시인 다형 김현승의 향기를 문학관 등 곳곳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한희원 서양 화가〉
마치 축제의 현장처럼 벌교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는 그 생생한 기록과 규모에 놀랐고 ‘부용산’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을 땐 남도의 또 다른 한을 가슴에 담게 되었다.
하지만, 제주민들이 이번 기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곳은 무진 광주였다.
의향과 예향이라고 오래전부터 불리며 근현대사의 중요한 기로마다 언제나 진실의 편에서 역사를 주도했고 뛰어난 예술인들을 배출했던 광주기행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사전 조사를 해온 회원들은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한국적 인상주의의 선각자 오지호, 현대 광주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다형 김현승, 국창 임방울 선생등의 자취를 찾아보고 그들의 예술혼을 만나보기를 원했다.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다형 김현승의 자취는 무등산과 호남신학대에 세워진 시비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다형이 떠나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 하나 없는 상태며 화가 오지호의 걸작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미술관. 그리고 국창 임방울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 및 상설공연장도 찾을 수 없어 마음속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정율성·천경자·임직순·박용철 등 광주가 사랑했던 당대의 뛰어난 예술인들의 정신을 만날 수 있는 미술·문학 기념관이 곳곳에 있었다면 외지인들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아 이래서 광주가 예술의 도시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제임스 조이스가 조국 아일랜드 더블린에 살면서 쓴 ‘더블린 사람들’, ‘율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까지 속속들이 고발하여 고향 사람들로부터 모진 협박과 비난을 피해 취리히로 망명한 후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더블린은 ‘조이스 산업’으로 일컬어질 만큼 조이스가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 가우디, 화가 피카소, 후앙 미로를 배출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배출한 위대한 예술가의 자취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무릇 진정한 예술의 도시란 그동안 배출된 뛰어난 예술가의 혼과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는 현대적 산물이 조화를 이룰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광주 예술혼의 바탕이 되는 정신을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고, 많은 작품의 모티브를 주었던 남광주역사가 사라진 것처럼 이미 무언가를 잃어버린 다음에 다시 찾는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이다.
제주문화포럼 회원들은 5·18 광주 민주화 묘역을 참배하고 무등산과 의재 미술관에 들른 후 저녁에는 광주 한 식당에서 남도 창을 듣고 광주의 가객이 부르는 부용산 노래에 흠뻑 취해 숙소로 돌아갔다. 필자는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가슴속에 광주의 정을 오래도록 새기기를 기원했다.
더불어 통영 유치환 문학관을 찾았을 때 필자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청마 유치환 시인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접하고 흠뻑 감동받았던 것처럼, 내 고향 광주에서도 존경하는 시인 다형 김현승의 향기를 문학관 등 곳곳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한희원 서양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