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읊조린 잔인한 달 4월이 가고 영랑이 노래한 찬란한 슬픔의 오월이 다가오고 있다. 찬란한 아름다움과 잔인한 슬픔의 양면을 응시하며 다르면서도 같은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의 언어는 나른한 봄날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찬란함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아픔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시인의 몫이다.

이제 곧 봄의 절정 오월이 온다. 산에는 벚꽃 천지이고 곳곳에 새로운 탄생의 소리로 가득하다. 문화 예술계도 봄은 특별한 계절이다. 마치 오랫동안 어머니의 자궁 속에 웅크리고 있다 태어난 아이처럼 겨우내 지독한 고통과 고독의 방에서 창조한 작품을 내보이는 그런 시기이다.

그렇지만, 2011년 올해는 묘하다. 예술의 거리를 비롯해 광주의 많은 갤러리에서 작가들의 개인전 소식을 듣기가 힘들다. 종종 기획전 소식은 들려 오지만 그래도 화가에게 개인전은 창작의 꽃이다. 삶이 힘들어도 순수한 열정으로 살아가는 작가들이 이렇게 좋은 봄날에 왜 웅크리고만 있는 것일까.

예술가들이 잠든 도시. 음악이 없고 문학이 떠나고 선과 색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세상. 이러한 감성이 없이 물질만 추구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예술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한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창조한 작품을 보고 감동하면 엔도르핀의 50배가 넘는 물질이 생성돼 자신도 모르게 위안과 생의 활력을 느낀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고통 속에서 그린 그림이, 베토벤의 고난을 넘는 환희의 노크소리가, 윤동주의 한편의 ‘서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신은 예술가들에게 천재성과 창작의 고통이라는 양면의 칼날을 주었지만 예술가들이 고통 속에서 창조한 작품들은 영원히 인류의 것이 되어 끝없이 살아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예술가들에게 얼마간의 빚이 있는 것이다.

몇 해전에 ‘포엠 콘서트’라는 공연이 광주에서 정기적으로 열렸었다. 한보리라는 싱어송라이터가 뛰어난 이 시대의 시인과 함께 한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공연이었다. 시를 음악으로 만들고, 그 시인을 초대하여 깊은 대화를 나누는 참 괜찮은 콘서트였다.

그동안 초대된 시인만 하더라도 신경림·정희성·김용택·정호승·안도현 등 한국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공연도 자금 조달과 관객 동원이 문제였고 우리는 이 시대의 뛰어난 시인들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 지금 열리고 있는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도 이 지역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좋은 공연이지만 많은 관객들이 찾아줄까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인다.

봄이 왔으나 예향 광주의 예술인들은 아직 겨울 눈보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전시회를 열어도 오픈 날 외에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고 공연장에는 관객을 채우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신명이 나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거창하고 많은 자본이 투자된 문화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만큼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풀뿌리 예술도 중요하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진정한 예술의 도시가 되는 것이다.

예술이 곧 사람이다. 사람을 키우고 소중하게 생각할 때 진정한 변화가 오게 될 것이다. 독재와 탄압으로 작가정신을 억압하는 것도 절망이지만 관심이 없이 버려두는 것도 또 다른 절망이다.

삶이 힘든 시기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은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은 절망을 먹고 사는 꽃이다. 여러분이 그 꽃을 기꺼이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희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