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 카페에서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요’ 라는 글을 읽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힘들게 일하는 걸 보며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부엌에서 혼자 찬밥 한 덩이로 점심을 때우고, 한겨울 차가운 우물물로 맨손 빨래를 하고, 식구들은 먹는데 어머니는 굶어도 되는 줄 알았다’는 내용이다. 그랬다. 옛날 어머니들은 남몰래 눈물과 고통을 참아내며 가족들에게 지고한 사랑을 베풀며 살았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 아빠로 보일까. 지난 학기에 ‘청소년 문제와 교육’에 관해 학생들과 토의한 적이 있었다. 부모한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다. 그랬더니 많은 학생이 ‘평소 엄마 아빠 성장과정을 자신들과 비교한다, 무엇이든지 아직 어리다며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고민을 털어놓으려 해도 이런 게 무슨 고민이냐며 묵살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공부만을 재촉한다.’ 등등.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필자도 우리 가정에서 엄마와 딸이 이렇듯 말다툼하는 게 생각났다. 그렇다면 왜 우리 세대는 부모와 자녀들의 생각이 엇박자가 나는 걸까. 무엇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해결책은 과연 없는 걸까.

구글과 보잉사에 리더쉽 컨설팅을 해주고, 한 번에 무려 25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억8000만 원을 받는다는 골드 스미스박사는, 가정의 리더인 부모들에게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내 생각을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말 것이며, 매사에 소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옳은 말만 하고 자신은 실천하지 못하면 자녀들에게 ‘이중인격자’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 말은 자녀들의 행복을 진정 원한다면, 자녀들의 실상을 정확히 직시하고, 자녀에 대한 지나친 허상에서 벗어나라는 지적이다. 또한 기성세대들이 사오십 년 몸에 배인 그들의 행동 관성은 고치지 않은 채 자녀들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게 문제이다는 충고이다.

작년 9월부터 두 달 동안 무려 34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하고도 요청에 밀려 재개봉까지 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 주인공 이태석 신부는, 20년간 내전으로 온갖 질병 속에 폐허가 된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다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하고 대장암으로 마흔여덟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학교에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곳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음악과 공부를 가르쳤으며, 모두가 꺼리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다가가 염증과 진물투성이로 2, 3차 감염된 손발을 직접 문지르며 치료해 주었다. 톤즈 사람들에게 그는 잠시 왔다 떠나는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자 동네 사람이었다. 그런 신부님이 죽었다는 소식에 톤즈 사람들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 보이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기며 살아온 부족들이었지만, 그분을 잃은 슬픔까지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우리나라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0위권에 3권을 한꺼번에 진입시키고, 판매부수도 900만 부가 넘어 ‘공지영 신드롬’까지 만들어냈던 소설가 공지영씨.

그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집필하면서 5개월 동안 1주일에 하루 서너 시간을 사형수와 함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밥 잘 먹었어’라며 건네는 인사말에도 눈물을 글썽이는 사형수를 보고,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위대한 명언이 아닌 진정 어린 짧은 말 한마디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자녀들의 행복을 진정 원한다면, 자녀와 생각 차이를 좁혀 나가는 교감을 계속 해야 한다. 그리고 격의 없는 교감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모든 걸 맞춰야 한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들이 요구하기 전에 진심 어린 사랑으로 먼저 도와주어야 한다. 더 이상 자녀들이 변하도록 다그치지 말고, 세상을 더 많이 살고 더 성숙한 우리 세대가 먼저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한 자식 사랑은 우리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받는 아이들이 피부로 느껴질 때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재민 순천향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