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를 통한 모금 활동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랑의 나눔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일 년 동안 열심히 모았을 돼지저금통을 놓고 가는 어린 아이,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꺼내어 전해주시는 할머니까지…. 이렇듯 말없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얼굴 없는 천사들’ 덕분에 올해도 자선냄비에는 차곡차곡 사랑이 쌓이고 희망이 싹튼다.

오늘날 기부와 나눔은 개인적 선심이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구성원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갈수록 팽창하는 시장주의 흐름 속에서 사회 공적기능을 시민사회가 함께 나누어 가짐으로써 공공성을 재구성하는 효과를 갖게 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내 총생산, 즉 GDP 규모는 8325억 달러로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제력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기부금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0.9% 수준으로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며, 최근 10년 사이 전체 국민 중 기부 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보고다. 나눔이 이처럼 미진한 이유는 사회적 나눔에 대한 교육과 인식의 부족, 세제혜택과 같은 보상체계의 미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빌 게이츠의 요즘 직함은 자선가다. 그는 교사 출신의 어머니를 통해 어릴 적부터 기부와 나눔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헌신적 자선 활동은 어린 빌 게이츠에게 가장 중요한 귀감이자 교육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행복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 초등학생들은 매년 학교에서 열리는 소소하고 다양한 자선 행사에 참가하게 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나눔은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교육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문화 선진국처럼 일상적인 기부 행위가 정착되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부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며, 기업은 그들의 사회적 책무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기부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한 기반 아래 일반 국민들의 적극적인 기부 문화 또한 활성화될 것이다. 또한, 학교 교육을 통한 사회봉사와 나눔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는 마음을 체득하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일회성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거시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인 틀을 갖고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2010년 11월 국정감사에서 ‘사랑의 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와 부정이 드러나면서 기부단체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기부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응답이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들의 기부단체에 대해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올 겨울에도 추위는 여전하고, 사회 양극화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은 더욱 늘어나는데, 이번 일로 말미암아 기부금이 줄어들어 그들에게 사랑을 전해줄 수 없을까봐 걱정이다.

기부단체는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회복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보다 투명하고 건강한 기부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기부와 나눔에는 감동이 있다.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끼는 것은 이러한 감동의 힘 때문이다. 감동을 주는 일에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며, 또한 나눔 감동의 에너지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눔의 문화와 제도를 투명하고 도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이정애 전남대 의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