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을 문화로 승화시킨 문화도시,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얼마 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에서 열린 학회를 참석하면서 1시간 거리의 에든버러에 다녀왔다. 비가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맑고 따스한 가을 햇살이 반갑게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문화의 힘이 곧 도시와 지역발전의 성장 동력이 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에든버러에서 한 수 배워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지지부진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지역민의 미래에 대한 염원을 총체적으로 담아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기원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오랜 세월 투쟁을 해 왔으나, 명예혁명 후인 1707년에 양국의 의회가 통합되면서 정식으로 연합왕국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인들의 잉글랜드에 대한 뿌리깊은 저항의식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으며, 1999년에는 292년 만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부활하였고 독자적인 자치권, 사법제도, 보건제도, 교육제도 등을 가지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1568년 잉글랜드의 침공을 받아 왕국의 멸망은 물론 당시 메리여왕이 앉았던 옥자석을 빼앗겨 오늘날까지도 잉글랜드 왕의 즉위식 때 올라서는 발 받침돌로 쓰이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문화로 잉글랜드를 이기자!”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의 정신은 이러한 잉글랜드와의 오랜 투쟁의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이러한 한(恨)의 정서를 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해 왔다. 중심 시가지에 문화의 거리를 만들고,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인물인 월터 스콧, 아담 스미스, 루이스 스티븐슨의 동상을 세웠으며, 에든버러 축제와 세계적인 미술작품 등을 전시함으로써 잉글랜드에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들을 통해 문화관광산업은 물론, 스카치 위스키 같은 주류산업과 버버리 상표로 알려진 모직산업까지 함께 성장하여 높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을 새로운 현대적 가치와 접목시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에든버러의 모습에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창조도시, 문화도시는 21세기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창조의 원동력은 문화이며, 이제 문화는 과거의 이념이나 경제 개념을 넘어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또한 이런 연유에서다. 문화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우리의 감성을 확장하고 삶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다중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문화조성사업이 5년째를 접어드는 이 시점에도 광주지역사회의 문화도시에 대한 인식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듯 보인다. 문화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공동체 안에서 합의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담론 활동이 미약했던 것은 아닌지? 그동안 각 집단의 이해관계 속에서 문화도시의 의미와 가치를 분할해 이해하고 전유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뒤돌아 볼 때라고 생각된다.

문화도시로 가는 길은 열린 마음을 필요로 한다. 이번 문화전당건립 또한 한풀이가 아닌 스스로를 극복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과거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이제 광주는 문화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삶의 전반에서 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21세기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주 시민 모두가 상생과 포용, 희망과 열정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리하여 문화조성사업이 갈등적 지역주의를 문화로 승화시키고, 우리나라가 문화대국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젠 과거의 소외와 저항의 역사에 묻혀 있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동력을 찾아 무한히 발전해 나가기를… 그리하여 아시아문화중심에 광주가 있고, 호남의 발전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하셨던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이정애 전남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