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아이디어, 사람 중에 제일은
2010년 10월 11일(월) 00:00 가가
필자가 곡성군수를 처음 맡은 때가 12년 전이다. 스스로 군수를 맡겠다고 나서서 마침내 군민의 선택을 받았던 터이므로, 꿈도 컸지만 짐도 무거웠다.
무엇보다도 먼저 살림을 꾸릴 돈이 문제였다. 너나없이 그렇게들 생각하고 말했었다. 10% 안팎의 재정자립도에 자체수입으로는 군 공무원들의 몇 달치 봉급 주기에 빠듯한 형편이니, 돈줄을 찾아 중앙정부에 매달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래서 참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런데 돈을 얻어내자면 그럴듯한 사업계획을 내놓아야 했다. 알아서 써야할 돈도 허비하지 않고 잘 쓰려면 계획을 잘 짜야 했다. 좋은 계획을 만들려면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며,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참 많은 분들을 찾았고,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의견을 주었다.
돈과 아이디어를 찾아 열심히 뛰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신나게 일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아이디어를 살려서 사업계획을 잘 만들고 중앙정부를 열심히 설득해서 돈을 끌어오는 일에만 열중하던 필자에게 문득 그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사업계획을 세워서 예산까지 확보했는데 막상 이를 잘 해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디어를 던져주고 컨설팅을 해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농촌의 현장에서 그 일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처음에는 깜짝 놀랐고, 이내 당황스러웠고, 마침내 비감 속에 망연자실했었다. 당시로서는 주변의 아무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할 수 없어서 혼자 마음에 새겼다. 서글프고 씁쓸한 추억이다. 살고 있는 주민 가운데서 그런 일을 감당할 사람을 찾지 못하면, 공무원이 대신 감당해야 했다. 농촌에 상주하면서 운영을 맡아 줄 외부용역업체라도 만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렵게 확보한 예산을 반납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쓰다 보면, 비효율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이런 실제의 경험이 필자로 하여금 인력양성에 많은 힘을 쏟게 했었다. 군수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먼저 공무원이 이를 소화해 주어야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행정이 하는 대다수의 일은 행정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이를 제대로 소화해 낼 때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므로 종국에는 주민이 소화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지역사회의 소화력만큼 성과를 낸다고 보고, 그 핵심이 되는 인력양성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필자는 군수를 그만두고 나서 지난 4년 동안 도시은퇴자가 농촌에 정주할 수 있는 실제의 틀을 제시해보고자 ‘강빛 마을’이라는 이름의 전원마을조성사업을 추진해 오면서, 많은 은퇴자를 만났다. 특히 수도권의 은퇴자들이 그 주된 대상이었다.
이 중 이른바 문화예술 분야의 은퇴자들 가운데는 교수 등 직장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연구실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는 분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도, 작품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자기가 사람을 불러 모아 점심이나 저녁을 대접한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제 막 노인의 대열에 합류한 내 연배의 은퇴자들은 오랜 일에서 벗어나 여행으로, 등산으로, 골프로, 바둑으로, 평생 못 가져본 여유를 즐기느라 바쁜 듯 보였는데, 벌써 상당수가 그런 즐김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더러는 새로운 공부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했지만, 자원봉사활동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뚜렷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주 내내 직장생활처럼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마치 자기가 아쉬워서 봉사활동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이들이 농촌에 정주한다면 참으로 소중한 인력자원으로 기능 할 터인데, 도시에서는 그 값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합당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재능으로 농촌의 청소년을 지도해 주고,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면, 얼마나 고마워하며, 스스로는 얼마나 보람이 크겠는가? 활기찬 제3기 인생을 열 수 있는 길이 농촌에 있다. 국가적으로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되어버린 인력자원을 100% 활용하는 셈도 된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도시은퇴자들이 농촌에 정주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과업은 국가적인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고현석 강빛마을 추진위원장
무엇보다도 먼저 살림을 꾸릴 돈이 문제였다. 너나없이 그렇게들 생각하고 말했었다. 10% 안팎의 재정자립도에 자체수입으로는 군 공무원들의 몇 달치 봉급 주기에 빠듯한 형편이니, 돈줄을 찾아 중앙정부에 매달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래서 참 열심히 쫓아다녔다.
돈과 아이디어를 찾아 열심히 뛰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신나게 일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아이디어를 살려서 사업계획을 잘 만들고 중앙정부를 열심히 설득해서 돈을 끌어오는 일에만 열중하던 필자에게 문득 그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사업계획을 세워서 예산까지 확보했는데 막상 이를 잘 해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군수를 그만두고 나서 지난 4년 동안 도시은퇴자가 농촌에 정주할 수 있는 실제의 틀을 제시해보고자 ‘강빛 마을’이라는 이름의 전원마을조성사업을 추진해 오면서, 많은 은퇴자를 만났다. 특히 수도권의 은퇴자들이 그 주된 대상이었다.
이 중 이른바 문화예술 분야의 은퇴자들 가운데는 교수 등 직장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연구실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는 분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도, 작품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자기가 사람을 불러 모아 점심이나 저녁을 대접한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제 막 노인의 대열에 합류한 내 연배의 은퇴자들은 오랜 일에서 벗어나 여행으로, 등산으로, 골프로, 바둑으로, 평생 못 가져본 여유를 즐기느라 바쁜 듯 보였는데, 벌써 상당수가 그런 즐김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더러는 새로운 공부에서 돌파구를 찾기도 했지만, 자원봉사활동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뚜렷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주 내내 직장생활처럼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마치 자기가 아쉬워서 봉사활동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이들이 농촌에 정주한다면 참으로 소중한 인력자원으로 기능 할 터인데, 도시에서는 그 값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합당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재능으로 농촌의 청소년을 지도해 주고,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면, 얼마나 고마워하며, 스스로는 얼마나 보람이 크겠는가? 활기찬 제3기 인생을 열 수 있는 길이 농촌에 있다. 국가적으로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되어버린 인력자원을 100% 활용하는 셈도 된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도시은퇴자들이 농촌에 정주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과업은 국가적인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고현석 강빛마을 추진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