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자는 이혼할 수 없나
2010년 09월 06일(월) 00:00 가가
얼마 전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던 이혼 관련 한 판결기사가 주목을 끌었다. 20년 넘게 남편으로부터 구박받아온 부인이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여 살해하려다 실패한 후 남편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한 사례다. 재판을 담당했던 서울고등법원은 부인의 이혼청구를 인용하면서 아울러 부부 재산의 40%를 부인에게 분할해줄 것을 남편에게 명했다.
여기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잘못한 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가’라는 사회적 화두다. 현행법상 이혼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협의상 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협의상 이혼은 문자 그대로 부부가 합의해 이혼하는 것으로 판사 앞에서 이혼의사 확인을 받은 후 그 확인서를 읍면동 사무소에 제출하면 성립된다.
재판상 이혼에는 일정한 이혼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민법은 이혼사유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 배우자가 악의적으로 자신을 유기한 경우,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에 의해 심히 부당한 학대를 받은 경우, 자기의 직계존속에 대해 배우자가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배우자가 3년 이상 생사불명인 경우를 예시하면서 마지막으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들고 있다.
이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 ‘혼인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주요책임이 있는 배우자’, 즉 이른바 유책 배우자도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앞서 본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대법원 판례에 등장하는 다음의 확정된 사례를 보자. A녀와 B남은 1969년경부터 동거하다가 1970년 5월 장남을 출산한 후 1974년 7월 혼인신고를 했고, 1980년 12월 차남을 출산했다. 남편은 1976년부터 병원을 개업해 경영하는 등 무난하게 혼인생활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부인은 춤을 추러 다니면서 가정을 소홀히 했고 몇 차례 아무런 이유 없이 가출했다가 20여일 만에 귀가하기를 반복했다. 집이나 병원으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전화도 잦았다. 부인을 찾는 전화였다. 급기야 부인은 1990년 3월경 2억여원이 예금돼 있는 통장을 갖고 다시 가출해 돈을 모두 인출했다. 1990년 5월 어느 날 밤에는 가출한 부인이 주점에서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남편이 발견해 집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다음날 밤 부인은 친구 2명과 함께 집을 빠져나가려고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5개월의 치료를 요하는 부상을 입었다. 남편은 1990년 9월 부인을 절도죄 등으로 고소해 부인이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부인을 엄벌해주도록 법원에 탄원했다.
부인은 1993년 법원에 이혼청구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부부관계를 유지할 생각은 없으나 부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혼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 부부 사이에는 위에서 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원인은 부인의 잦은 가출이라 할 수 있다. 부인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부인의 손을 들어줬다.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나, 다만 ‘그 상대방도 혼인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에게도 이혼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즉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위와 같은 예외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청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미 실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혼인을 법의 강제에 의해 유지한다는 것은 개인의 인격을 기반으로 하는 혼인의 윤리성에 반한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무제한으로 허용한다면, 혼인을 파탄에 빠뜨린 유책 배우자의 입장만을 옹호하고, 반대로 이혼을 원치 않는 무책 배우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른바 축출이혼을 합법화시키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스웨덴 · 미국 등 서구 제국의 현대 이혼법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물론 이혼을 금기시하는 전통윤리가 아직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서구의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가족관 내지 혼인관도 예전에 비해 서구화된 면이 많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무제한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상의 예외사유를 더욱 넓힐 시기가 됐다고 본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 등의 문제를 더욱 현실화해 반대 배우자의 보호에도 충실해야 한다.
〈구길선 변호사〉
재판상 이혼에는 일정한 이혼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민법은 이혼사유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 배우자가 악의적으로 자신을 유기한 경우,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에 의해 심히 부당한 학대를 받은 경우, 자기의 직계존속에 대해 배우자가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배우자가 3년 이상 생사불명인 경우를 예시하면서 마지막으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들고 있다.
부인은 1993년 법원에 이혼청구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부부관계를 유지할 생각은 없으나 부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혼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이 부부 사이에는 위에서 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원인은 부인의 잦은 가출이라 할 수 있다. 부인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부인의 손을 들어줬다.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나, 다만 ‘그 상대방도 혼인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에게도 이혼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즉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위와 같은 예외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청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미 실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혼인을 법의 강제에 의해 유지한다는 것은 개인의 인격을 기반으로 하는 혼인의 윤리성에 반한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무제한으로 허용한다면, 혼인을 파탄에 빠뜨린 유책 배우자의 입장만을 옹호하고, 반대로 이혼을 원치 않는 무책 배우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른바 축출이혼을 합법화시키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스웨덴 · 미국 등 서구 제국의 현대 이혼법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물론 이혼을 금기시하는 전통윤리가 아직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서구의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가족관 내지 혼인관도 예전에 비해 서구화된 면이 많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무제한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상의 예외사유를 더욱 넓힐 시기가 됐다고 본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비 등의 문제를 더욱 현실화해 반대 배우자의 보호에도 충실해야 한다.
〈구길선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