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는 나이 든 사람을 노인으로 호칭하기보다는 어르신으로 호칭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다. 어르신은 어른에 대한 존대어라 할 수 있는데, 존대 받는 어른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피아제(J. Piaget)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 발달은 ‘형식적 사고’ 단계에 이르면 완결된다고 한다. 형식적 사고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으며 효율적이고 복잡한 추리를 할 수 있는 단계의 인지 능력을 말한다. 이 같은 사고는 청년기에 완결되며, 이때 습득한 인지능력으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년기 삶이 광범위하게 연구되면서 피아제 이론과는 다른 이론이 제시되고 있다. 피아제가 말한 것과는 달리 인간의 인지 능력은 청소년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발달하며, 그 결과 노년기에는 청소년기 때와는 다른 보다 원숙한 인지 능력, 즉 ‘후형식적 사고’를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형식적 사고란 사물을 절대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이해하며, 상호 모순된 사고와 경험을 반영적으로 통합할 수 있게 되는 사고 능력이다. 후형식적 사고를 하게 되면 형식적 사고의 적용 때와는 달리 일상의 문제들을 전혀 새로운 조망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후형식적 사고라는 개념은 인간의 발달이 종래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청년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짐을 말해준다. 죽을 때까지 변하고 적응하며 다시 그 틀에서 또 변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알려 준 셈이다.

또한 후형식적 사고라는 개념의 발견은 수학적이고 논리적 사고가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넘는 지혜라는 새로운 인지 영역이 있고, 이것은 경륜과 삶의 체험 속에서 발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형식적 사고가 추론에 의해서 경험 없이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후형식적 사고는 삶의 현장에서 세월과 더불어 깨닫게 되는 경험적 지식으로, 통상적으로 말하는 ‘지혜’와 같은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지혜는 세월과 비례한다. 세월이 반드시 지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지혜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혜는 젊은 사람에 비해 늙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우위이다.

나이 들어가며 늙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 지혜이다. 젊은 옷을 입고 젊은 세대들의 말을 배우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해도 지혜만큼 확실하게 노인의 어른으로서의 자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동양적 사고 체계에서 보면 지혜도 완성이 아니다. 공자는 “子曰 ?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은 (많은 사람이)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감히) 따를 수 없다라고 하였다.

신영복은 이 문장을 지(知)보다는 우(愚)가 어렵다는 것, 즉 사람이란 지혜롭기보다는 어리석은 척하기가 더 어렵다는 뜻으로 푼다.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의 형태”(신영복 강의, 184)인 것이다. 안다 할지라도 아무 데서나 나서지 않는 것, 때로는 알고 있어도 잠잠히 입을 다물 수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의 지혜가 결코 지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등등을 행하는 사람이 참다운 지혜를 갖는 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어른다움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명석”하며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겸손과 사양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에 있다.

/서선희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