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하게 수집된 증거
2010년 08월 09일(월) 00:00 가가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관계가 발칵 뒤집히고 국무총리실 전 공직윤리지원관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청와대 전 비서관의 개입설도 흘러 나온다.
그렇다면 ‘불법사찰’과 같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재판과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을까?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라 사전에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확정된 재판상의 사례를 들어 이 점을 생각해보자.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4월25일 A모 전 도지사 선거를 위해 제주도 소속 공무원, 일부 외부인 등이 전 제주도지사 관사를 수시로 오간다는 제보를 접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섰다. 관사에서는 제주도청 소속 공무원들과 제주대 교수, 전 제주일보 기자 등이 모여 있었다. 그날 저녁에 있을 KBS 주최 제주도지사 선거 관련 토론회에 대비해 A 전 지사를 위한 대담 및 토론 자료, 예상 질의·답변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곧바로 제주지방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제주도 공무원들이 공모해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 수사 의뢰의 골자였다.
이에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는 제주지방법원 판사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제주도지사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러나 당시의 압수·수색 절차에는 형사소송법에 위배된 점이 있었다. 압수물 중에는 영장에 적시된 압수대상물에 해당되지 않은 것이 포함됐다. 또 영장집행 과정에서 대상자에게 영장도 제시하지 않았고 압수목록도 교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A 전 도지사는 같은 해 10월 ‘소속 공무원들로 하여금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게 하였다’는 등의 공소사실로 제주지방법원에 공소 제기됐다. A씨와 그 변호인은 법정에서 ‘형사소송법에 위반한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된 압수물은 유죄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을 담당한 제주지방법원이나 2심을 담당한 광주고등법원은 종래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비록 압수절차가 위법하더라도 압수물의 증거능력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즉 압수물은 절차가 위법하더라도 압수물 자체의 성질이나 형상에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 만큼 그 형상 등에 관한 증거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압수물과 그 압수물을 기초로 해서 획득한 진술(이른바 2차적 증거)을 유죄 인정의 유력한 증거로 채택해 A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의 3심을 담당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07년 11월15일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면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압수·수색에 관한 적법 절차와 영장주의의 근간을 선언한 헌법, 이를 이어받아 실체적 진실규명과 개인의 권리보호 이념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압수·수색절차에 관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의 규범력은 확고히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해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형성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선언한 것이다.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후 ‘제주지사실 압수수색사건’이라 불리는데, 우리 사법사상 획기적 판결중의 하나이다.
결국 A 전 지사는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금년 6월까지 제주도지사로서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형사 절차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형사 절차는 ‘국가에 의한 부당한 형벌권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절차’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오로지 실체적 진실 발견만으로는 안 되며,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는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위법한 절차에 의해 수집된 증거는 유죄를 인정하는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 당사자가 갖고 있는 권리의 적정한 행사를 보장하면서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들을 준수하는 것은 재판의 결과 못지않게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은 결국 그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법원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배제한다면 앞으로 수사 절차를 보다 신중하고 적법하게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용인해준다면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의 불법은 영영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구길선 변호사
그렇다면 ‘불법사찰’과 같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도 재판과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을까?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라 사전에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확정된 재판상의 사례를 들어 이 점을 생각해보자.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곧바로 제주지방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제주도 공무원들이 공모해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 수사 의뢰의 골자였다.
그러나 1심을 담당한 제주지방법원이나 2심을 담당한 광주고등법원은 종래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비록 압수절차가 위법하더라도 압수물의 증거능력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즉 압수물은 절차가 위법하더라도 압수물 자체의 성질이나 형상에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 만큼 그 형상 등에 관한 증거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압수물과 그 압수물을 기초로 해서 획득한 진술(이른바 2차적 증거)을 유죄 인정의 유력한 증거로 채택해 A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의 3심을 담당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07년 11월15일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면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압수·수색에 관한 적법 절차와 영장주의의 근간을 선언한 헌법, 이를 이어받아 실체적 진실규명과 개인의 권리보호 이념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압수·수색절차에 관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의 규범력은 확고히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 이를 기초로 해 획득한 2차적 증거 역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형성된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선언한 것이다. 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후 ‘제주지사실 압수수색사건’이라 불리는데, 우리 사법사상 획기적 판결중의 하나이다.
결국 A 전 지사는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금년 6월까지 제주도지사로서의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형사 절차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형사 절차는 ‘국가에 의한 부당한 형벌권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절차’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오로지 실체적 진실 발견만으로는 안 되며,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는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위법한 절차에 의해 수집된 증거는 유죄를 인정하는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 당사자가 갖고 있는 권리의 적정한 행사를 보장하면서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들을 준수하는 것은 재판의 결과 못지않게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은 결국 그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법원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배제한다면 앞으로 수사 절차를 보다 신중하고 적법하게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용인해준다면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의 불법은 영영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구길선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