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세대인 나는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인은 무례하다는 말이다. 당시의 국제선 스튜어디스들은 한국인들은 기내에서 양말을 벗어 발 냄새를 진동케 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술을 연거푸 청해 마시다가 비행기 안에 술 냄새를 풍풍 풍기는 것도 모자라 고성방가까지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전했다. 해외여행 가이드들도 한국인들은 어딜 가나 고추장을 싸다니며 호텔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냄새를 한가득 호텔방에 남겨놓고 떠나기가 일쑤여서 남부끄럽다고 가세했다. 보지 않았어도 선명한 영상을 그려내기에 충분한 그들의 진언을 듣고 우리 스스로도 한국인은 참 무례하구나 생각했고, 그런 우리를 창피해 했었다.

한국인을 비방하기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입술을 댄 술잔을 상대방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마구 들이대며 술을 권하는, 도무지 조용히 술 마실 줄을 모르는 무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들 했다. ‘빨리빨리’, 냄비근성’의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손대는 공사나 만들어내는 제품들은 부실하거나 허술하기 십상이라고도 했다. 그런 말이 대중매체에 회자되면 우리들도 덩달아 “맞아”, “우리는 참 부끄러운 족속들이지” 하며 동의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구 사회나 문화 앞에서 주눅이 들고, 문화적 자존 감은 애써 민족주의적 관점에 기대어야 겨우 존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번 월드컵 축구에 나선 우리 젊은 선수들은 “과거에는 남미나 유럽 선수들과 겨룰라치면 주눅부터 들었고 수비만 하다가 게임이 끝났는데, 지금은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눅 들지 않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어쩌다 타이밍이 좋아 히트한 것이 아니냐며 반신반의를 내려놓지 못했던 ‘한류’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해외 많은 나라에서 한국의 제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거나 가지고 싶어한다는 뉴스가 전해오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많이 높아졌고, 한국의 문화는 “세계에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라는 자부심까지도 형성되고 있어, 우리의 삶 속에 숨어있는 문화적 잠재성을 발굴하고 재현하는 시도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반전은 과거 그렇게 혐오했던 한국인의 조야함, 무대포, 무례함에 숨어져 있던 야성의 또 다른 측면이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례하다고 비판했던 한국인의 조야한 열혈성이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한 역동적 에너지로 작용한 것이다. 그 열혈성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내도록 도왔고, 그러므로 인해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우리의 타고난 성향과 기질을 내보이는데 그렇게 부끄러워하거나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생활수준이 좋아지면 야성은 없어지기 쉽다. 또 얼마큼 살게 되면 교만해 지기 십상이다. 과거처럼 더 이상 배고프지 않는 현실에서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야성의 기질을 어떻게 보존해 갈 것인가, 더 나아가 남을 배려하지 않는 단순 야성이 아닌 보다 성숙하고 깊이 있는 야성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의 숙제를 풀어야 할 때이다. 그러한 숙제는 오늘의 젊은 세대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랭카스터와 스틸먼(L. C. Lancaster & D. Stillman)은 오늘날의 세대란 ‘무선탯줄’로 항상 부모와 연결되어 있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칭찬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직장을 숙명으로 보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선호하는 등등의 특성을 가진, 그래서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세대라고 한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의 동력원이었던 과거세대의 열혈성이 어떻게 계승되고 성숙될 것인가는 중요하고도 흥미 있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서선희 광주대 사회복지학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