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부터 세종시 백지화를 들고 나온 현 정권의 정치게임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점입가경이다. 여권 내 정쟁과 여야 투쟁은 폭설 한파로 춥고 배고픈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무책임한 정치의 누적행위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이 타지역에 끼칠 파급효과보다는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이 정권유지 게임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더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 마을은 지난 정권도 잘 우려먹었던 정략적 카드였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시작된 행정복합도시 건설의 의미는 통째로 사라지고 정치 라이벌 제압과 수도권 표심 잡기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한편으로는 대선 후보시절부터 강력한 정치 라이벌이 견지하고 있는 다른 정치적 견해를 정쟁을 통해 눌러야 남은 대통령 임기 동안 거침없는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올해 실시될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수도권에서 패배할 경우 국정운영에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현 정부는 일단 무리한 정치게임의 판을 깔아 놓고 충청도민의 여론을 호전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의도 속에는 여론이 호전되면 정치 라이벌도 어쩔 수 없이 굴복할 것이라는 계산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현 대통령의 정치 라이벌도 차기 대권을 위해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고 정치 생명을 걸 것이다. 대통령 후보 선거 패배 후 가슴 속에 깊게 남아 있는 앙금이 다시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를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국민은 20년 후에나 완성될 세종시가 뭐가 그리 급하고 중요하다고 엄청난 국력을 정쟁에 소모하느냐는 의문을 갖는다. 정부 여당의 세종시 수정안 홍보행위는 광기에 가깝다. 국정을 책임진 총리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세종시 문제에 몰입하고, 언론매체는 매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이 문제를 보도하고 논평하는 데 중요한 지면과 시간을 할애한다. 국가행정을 책임진 중앙부처 국·실장들이 세종시 홍보에 동원되고, 지자체 공무원과 경찰까지 홍보전에 합류했다고 한다. 과거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이 써먹었던 수법이 그대로 부활된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치게임은 이제 출구가 없는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먹고 먹히는 잔인한 싸움은 올 지방선거가 끝나봐야 중간 결과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분명히 엇갈리는 스포츠 게임과는 달리 완전한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양자가 모두 상처를 감수하고 시작한 이 게임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 규칙도 환호하는 관중도 없는 불순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특히 여당의 권력자들에게 보낼 메시지가 있다. 정부 여당은 현재 진행 중인 지저분한 정치게임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OECD 국가 중 선두에 있다고 들떠 있는 데 지금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실업자 수가 300만을 넘었다는 데 금년을 말로만 ‘일자리 창출의 해’라고 하지 말고 실질적인 고용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은 증가했지만 내수침체로 실질임금은 줄어들고 가계부채는 태산처럼 쌓이는 데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정치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 인적·물적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결정하는 행위다. 정치를 잘해 다시 다수의 표를 얻는 것이 집권의 원칙이다. 대통령이 날마다 21세기 한국의 국격을 얘기하면서 19세기 전제정치에서나 볼 수 있었던 권력투쟁으로 정권 안정과 장기집권을 시도하는 한 국격은 없다. 국민의 상식을 초월하는 막장 정치게임을 국민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국격을 논할 수 있겠는가?

/김성재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사회과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