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에 내가 맡은 교양 과목 ‘현대한국문학의 이해’의 수강 인원이 스무 명이라는 것을 알고 걱정이 앞섰다. 이번 학기부터는 수강 인원이 스무 명 이하인 강의도 상대 평가를 해야 된다는 지침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수강 학생이 스무 명 이하가 되면, 우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구성원 사이에 각별한 유대와 책임감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대부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특별한 학생을 제외하고는 C 이하의 평점을 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출석부를 일별하고서 나는 근심을 좀 덜었는데, 스무 명 중 세 명이 예술계열의 학생들이었고, 다섯 명이 중국 유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술계열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출석이나 과제물 제출에 대해 분방한 편이고, 아직 한국어가 서툰 외국 학생들은 한국의 문학 작품들을 섭렵하는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을 것이므로 이들에게 C 이하의 평점을 주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한 대로 예술계열 학생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중·장편소설을 읽는 독서토론 시간에는 한 번도 소설을 읽어 오지 않았다. 이들이 조별 발표를 하기 하루 전날, 아무래도 미심쩍어 전화로 확인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들이 발표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내게 있는 지난 학기의 자료를 가져다가 참고하라고 하자, 학교로 가지러 갈 시간이 없으니 그냥 자기들이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이들의 발표 주제인 ‘신경림의 시’가 엉망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강의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뜻밖에 이들은 제법 흥미진진한 발표를 했다.

배경지식은 짧지만 인터넷을 활용한 영상 자료까지 만들어 와서 신경림을 화려하게 연출했던 것이다. 나는 또 이들이 소설 토론 시간에는 자주 결석을 하지만, 희곡 읽기 시간에는 열의를 가지고 참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 유학생들 중 세 명은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으며, 두 명은 한 번씩 결석했다. 조별 발표 때는 한국 학생들과 같은 조가 되어, 한국의 시를 중국어로 번역해 오기도 하고, 희곡을 읽을 때는 배역을 맡아 한 템포 느린 대사로 다른 학생들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중·장편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에는 이들은 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종강을 하고 나서, 이들을 따로 불러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를 읽고 독서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즐거이 응했는데, 유창하지는 못했지만, 주인공 복녀의 몰락이 환경 때문인지 의지력 부족 때문인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토론을 끝내면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하자 한 학생이 “A+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으나, 나중에 그 학생이 이 강의에서 A+를 받을 만큼 노력을 했다고 스스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평한 평가란 어떤 것일까.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준 후, 그 성취도를 평가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평등한 교육의 기회라고 하는 것이 과연 균등한 교육의 제공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술계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취향과 특성에 맞는 강의 방식으로써 ‘현대한국문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중국 유학생들에게는 그들의 능력과 여건에 알맞은 틀로써 ‘현대한국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현대한국문학의 이해’에 관한 평등한 교육 기회의 제공이 아닐까?

교육의 목적이 표준화된 평가를 통해 경쟁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하고 발전하는 인간을 키우는 것이라면 말이다.

나는 성적은 매기되 등수는 정하지 않는 평가 방식에 찬성한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도 수강인원 스무 명 이하의 강의에는 절대 평가가 허용된다고 한다. 나는 아마도 내 학생들에게 공평한 학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란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