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를 여행해본 이들은 대개 몽마르트의 물랭루즈라는 카바레에 가봤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대형의 화려한 쇼가 열리는데, 수많은 미녀들이 반라의 몸으로 섹슈얼하게 무대를 꾸미는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거기에다가 지금의 세대를 낳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도 즐겨 들어 다녔던 곳으로 생겨난 지 120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유흥공간이다.

그런데 그 물랭루즈의 특이한 점은 현란한 무대와 미녀들과 그곳의 연혁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은, 파리가 나치에 점령당했을 당시에 물랭루즈에서 춤추던 이들이 대부분 레지스탕스로서 반 나치 운동에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치마폭 속에 무기를 감추어 날랐으며 정보연락책임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보급품을 조달했다. 비록 쇼걸의 신분이라고 할지라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은 거룩한 정신이 프랑스인들을 감동시켰으니, 그런 까닭으로 물랭루즈는 오늘까지도 프랑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프랑스의 사랑을 받는 곳이므로 파리를 찾는 사람들도 너도나도 물랭루즈 쇼를 보겠다고 줄을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에서 파리의 물랭루즈를 거론하는 것은 그곳을 설명하는데 뜻이 있다기보다는, 내 마음의 저 깊은 곳에도 남들이 잘 모르는 나 혼자만의 물랭루즈가 있기 때문이며, 그곳에서 일하던 이들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물랭루즈. 그 집은 바로 1970년대 후반에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있던 ‘항아리집’이라는 이름의 술집이다. 그 집은 간판도 없는 나지막한 기와집으로, 방마다 앉은뱅이 술상이 놓여있는가 하면, 저녁이면 그럭저럭 낯익은 술꾼들이 너나들이로 인심 좋게 술을 사고, 또한 돈이 없으면 외상을 달고, 그것마저 갚지 않아도 그 누가 갚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당시의 엄혹한 시대적 분위기와는 달리 아늑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거기에다가 그곳의 몸집이 큰 주인 아주머니는 마음 씀씀이가 무던하여 누구에게나 잘 대해주었으며, 술시중을 들던 아가씨들도 한결같이 마음씨가 고왔으니, 항아리 집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 주인에 그 아가씨들’이라고 좋아하면서 부담 없고 편안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 집 사람들은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나처럼 세상에 맞서다가 수사기관에 수배되고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살붙이보다도 더 정답게 대해 주었으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그랬을까? 술도 몇 잔 제대로 마실 줄 모르고 허구 헌 날 수사기관에 쫓기는 몸인 내가 어느 때부터인지 항아리 집에 드나들었고, 그 집 아주머니와 종업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나 피를 나눈 누이들처럼 나를 감싸주었으며, 나를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숨어다니면서 굶지 말라고 내 주머니에 돈까지 넣어주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낮에는 여기저기 길거리에서 뭇사람들 속에 섞여서 숨어다니다가도 밤늦은 시간이면 마치 내 집을 찾아가듯이 광화문의 항아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변함없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눈물겨웠다. 그럴 때면 분명히 그들은 내 가족이었으며 친구였고 동지였다. 어쩌면 그들은 혈혈단신 내동댕이쳐진 내 몸을 건져주고, 낙심과 절망에 시드는 내 영혼에 숨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그 춥고 어두운 시절에 광화문의 그 술집은 내 마음의 물랭루즈였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그들과 헤어졌다. 하루아침에 내가 검은 천에 눈을 가리우고 두 손에 수갑을 찬 채로 어디론가 끌려가고, 죽음의 집인 감옥 안에서 몇 번의 슬픈 겨울을 보낸 뒤에 서울에 돌아와 보니, 광화문 그 항아리 집 부근은 재개발의 이름으로 쑥대밭이 되었으며, 단 한 채의 기와집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항아리 집의 주인 아주머니라든지 종업원들의 종적도 찾을 길이 없었고, 나 역시 또 다른 파도에 연거푸 휘말린 탓으로 한 번도 그들을 찾아볼 겨를도 없이 살아오다가 지금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나 그 술집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집에서 듣던 서글픈 노랫가락과 젓가락 장단, 아가씨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까지도 나는 잊지 못한다. 당시에 그 집을 드나들던 다른 이들에게는 그곳이 그저 시중의 평범한 술집의 한 곳에 지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에게만은 그곳은 너무나도 정겨운 사랑의 집이었으므로. 그런 연유로 나는 그때 광화문 그 항아리 집을 지금도 그리워한다.

다시 보고 싶다, 내 마음의 물랭루즈.

/양성우 시인·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