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중국의 푸단대학에 파견 교수로 나간 첫 학기에, 나는 한국어과 3학년 학생들과 2학년 학생들에게 ‘한국어 시청설(韓國語視聽說)’이라는 과목을 가르쳤다.

한국어로 말하고 듣는 연습을 시키는 교과였는데, 3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1년 정도 한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난 터라 자유롭게 의사 소통이 되는 반면, 이제 막 2학년이 된 학생들은 어휘가 부족하고 말이 어눌하여 마치 어린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3학년 수업에서는 ‘올드미스 다이어리’라는 시트콤을 학생들과 함께 보며 깔깔대다가도, 2학년 수업에 들어가서는 아직 인격 형성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듯, 교과서의 내용을 천천히 반복해 가며, 뭔가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려고 애쓰게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 학생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학생의 한국어를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워, 영어로 한번 말해 보라고 했더니, 술술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놀랍도록 어른스러운 생각이었다. 아하, 참, 이 애들이 대학생들이지!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다만 한국어 능력이 부족할 뿐인데, 나는 마치 그들이 인지 능력이나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사, 홍메이, 시게꼬, 파니다시.

이들은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한국어 고급반의 결혼이민자 여성들이다. 필리핀, 중국, 일본, 태국 등 태어난 곳은 모두 달랐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다문화 가정’이라는 낯선 삶을 공유하게 된 이들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그러나 단지 한국말이 서툴 뿐인데, 다른 이로부터 아이 취급을 당하게 될 때,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고 비애감이 든다고 호소한다.

“저희 시아버지는요, 저에게 유치원생에게 말하는 것처럼 천천히 말씀하시고요, 한 번 주의를 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하세요. 제가 아이도 아닌데, 미치겠어요.”

“제가 다니는 미장원 아줌마는요, 제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이 오면, 이분 먼저 해드리자, 괜찮지? 하는 거예요. 저는 당황해서 말이 잘 안 나오니까, 그냥, 네, 하게 돼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너무너무 화가 나요. 저도 바쁘잖아요.”

“저희 시댁 식구들은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자기들끼리만 상의해요. 제가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가족이니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잖아요.”

“학부모회의에 가도 그래요. 자식들 일이잖아요. 무슨 일로 회의를 하는지 정말 알고 싶은데, 다른 학부모들이 끼워 주지 않아요.”

마리사, 홍메이, 시게꼬, 파니다시.

우리는 이들이 지닌 지적 능력이나 감수성이 한국어를 통해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한국어교육 시스템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먼저 이들이 우리 공동체의 동반자이며 어엿한 성인이라는 생각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주에는 ‘광고를 듣고 말하기’라는 단원을 공부했는데, 이들과 함께 만들어 본 공익광고의 문안을 전한다.

“우리는 아이가 아니에요. 단지 한국어가 서툴 뿐이에요. - 공정하게 대해 주세요. 무조건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가정일과 학교 일에 참여하게 해 주세요.”

/이미란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