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읍에서 남원방향으로 7㎞쯤 올라가다 보면, 지리산 골짜기에 천은사라는 절이 있다. 지금의 그곳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괘불과 아미타후불탱화를 비롯하여 고색창연한 수홍루와 일주문 등으로 인근의 화엄사와 함께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가 머물던 1975년 그해의 천은사는 겨우 극락보전만 단청이 성한 채 높은 댓돌 위에 덩그렇게 서있었고, 나머지의 절집들은 퇴락할 대로 퇴락하여 비스듬히 기울거나 지붕마다 잡초들이 더부룩하게 자라던, 깊은 산골짜기의 숲 그늘에 묻힌 숨은 절이었다.

그곳에 나는, 그해 4월 어느 날 수사기관의 검은 차에 실려서 강제로 보내졌다. 당시의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은 나를 감옥에 가두고 싶었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 ‘현대판 유배’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까닭으로 나는 평소에 꿈도 안 꾸던 절 생활을 시작했다. 일주문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내밀지 못하고 절 마당이나 그 언저리의 계곡과 숲으로 국한된 울타리 안에서 꼼짝 못한 채 그해 내내 절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영락없는 귀양살이였다. 그해의 끝 무렵, 그 어둔 절 속을 남몰래 빠져 나와서는 구례구역에서 서울로 오는 밤 기차를 잡아타기 전까지는.

물론 내가 그곳에 끌려가게 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당시의 유신군벌정권을 비판한 ‘겨울공화국’이라는 시작품을 썼고, 그 시를 광주의 어느 구국기도회에서 직접 낭독했다는 죄(?)였다. 그로 인하여 나는, 천직으로 알고 있던 여학교 교사직을 스스로 내놓도록 권력으로부터 강요받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하여 돌아오는 것은 핍박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검은 손들은 학교 당국자들을 앞장세워서 나를 모함하고 적대시하게 만드는가 하면, 동료교사들을 매수하여 나를 비방하게 만들었으며, 일부 순진한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나를 감시하게 만들었다. 또한 힘깨나 쓰는 교직원들을 시켜서, 나의 해직조치에 항의하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매질하고 협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파면장을 받기도 전에 이미 교무실의 내 책상과 의자마저도 치우게 했으니, 그것은 너무도 서글프고 안타까운 장면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당시 권력은 경찰을 풀어서 교문을 가로막고 담 밖을 에워싸는 것이 일과였으며, 교실복도나 계단은 물론이고 행정실이나 수위실에 이르기까지 학교 안팎을 온통 점령하다시피 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은 내가 학교 안에 설자리를 아예 없애겠다는 뜻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험난한 과정의 끝에 결국은 나에게 교사직의 파면결정이 내려졌고, 그 즉시 나는 학생들의 눈물바다를 뒤에 둔 채 수사기관원들의 손에 붙들려갔다.

그날, 내가 그들에게 개처럼 끌려가던 날의 광주천변에 내리는 봄 4월의 햇살은 유난히 밝고 따사로웠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는 공원길을 메운 군중의 함성은, 지금도 내 귓전에 선하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그날 그곳의 행사는 나를 광주에서 영원히 쫓아내자는 관제 궐기대회였다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시작품 한 편으로 트집잡혀서 교직에서 파면되고, 고향에서 추방당했으며, 낯설고 어둑한 산골짜기의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 갇힌 것이다. 그리고 그해 내내 노고단의 큰 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소리와 계곡물 소리와 스님들의 독경소리에 묻혀 살았다. 나를 감시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절 밖으로는 나가지 못할망정 나를 찾아오는 이들까지는 막지 못하던 차에, 주말이 되면 삼삼오오 그 먼 곳에까지 나를 찾아와 주던 학생들도 많았으니, 그녀들의 야무지고 정겨운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중년이 훨씬 지나서 아이들을 결혼시킬 나이가 되었을 터이지만, 그녀들은 내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 나를 지키기 위하여 여러 달 동안 싸워 주었으며, 내가 지치고 외로웠을 때에 그 산 속의 유배지에까지 몸소 찾아와서 위로해 주던 사람들이니까.

이미 아득히 지난 35년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엄혹했던 시절의 한 토막이 이렇게 선명하게 머리에 떠오르고, 그 위에 지리산 속의 천은사에까지 끌려가서 절 방에 갇혀 지내던 생각들이 자꾸만 오버랩됨은 무슨 까닭일까? 그 슬픈 봄날 하루, 내가 남의 손에 붙들려서 그곳으로 가던 길은, 혹시라도 앞으로 이어지는 내 삶의 악전고투와 천신만고를 예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설령 그런 길이었을지라도 나는, 그때를 내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게는 줄곧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겠지만, 한 편으로는 잔잔한 그리움이 됨으로. 어쩌면 모든 운명을 건 험한 싸움의 과정도 이렇게 세월이 지나간 뒤에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양성우 시인·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