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 동안 그리고 최근 매일 저녁 호남인들의 큰 관심을 끌어온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올해 프로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아 타이거즈’ 야구단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그것이다. 하위권에서 맴돌던 한 야구단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그동안 무관심했던 지역민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 팀이 최강자를 결정하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V10’의 위업을 달성함으로써 그들의 관심은 절정에 이르렀다.

프로 야구는 1980년 군사독재 시절 우민화(愚民化) 정책으로 태어났다. 최고 성적을 자랑했던 호남의 프로 야구팀은 그러한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지역민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우스꽝스럽게도 올해의 호남 소속 프로 야구팀이 펼치는 이야기는 약 30년 전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살기 팍팍한 어두운 세상 속으로 프로 야구가 뜻밖에도 한 줄기 기쁨과 희망의 빛을 던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호남인들은 이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몇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 있지만, 우선 동일한 규칙 아래서 벌어지는 정당한 승부의 역동성을 들 수 있다. 독재 시절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적 경쟁이 동일한 규칙 아래서 일어난 적이 없었다. 민주의식으로 무장한 스포츠 관중은 자신의 지역공동체에 소속된 팀이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히 승리했을 때 그 팀의 영웅들과 자신을 일치시키며 쾌감을 느낀다. 특히 암울한 시대를 사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그렇다.

또 다른 이유로, 이 스포츠에서 펼치지는 이야기는 조작된 허구(虛構)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관중의 눈앞에서 또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예측이 불가능한 센세이션의 연속이다. 경기장의 관중과 텔레비전 시청자는 실제 세계 속에서 실제 인간이 엮어내는 박진감 넘치는 오락의 세계 속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프로 야구뿐만 아니라 승패가 갈리는 모든 스포츠에서 발견되는 매력은 경쟁자들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스포츠는 적군과 아군이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에 물밑에서 일어나는 암투가 주는 심적인 고통에서 자유롭다. 응원 역시 분명한 편 가르기로 진행되고 양다리 걸치기의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 한 마디로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에는 회색이 없기에 즐기기는 데 마음이 편하다.

공정한 경쟁, 재미, 투명성 외에도 스포츠는 엄숙한 의식(儀式)으로서 가슴 속에 침전된 응어리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다. 호남인들은 부당하고 비민주적 권력행사, 차별대우, 빈곤의 한을 프로 야구에서의 승리가 연출하는 제식(祭式)을 통해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악귀를 쫓아내는 제사에서처럼 프로야구 승리의 제전(祭典)에서 이 땅의 오염된 정치와 경제를 정화시키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스포츠가 표출하는 이 모든 현상들은 한 번의 짧은 호흡으로 끝나는 의식행사다. 스포츠 행사 뒤에 숨어 있는 정치경제학은 아무나 꿰뚫어볼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복잡하다. 프로 스포츠에 걸맞게 돈 버는 사람, 정치적 야망을 채우려는 사람, 미디어와 광고 종사자, 입신양명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 등이 경기장 밖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스포츠 소비자가 느끼려고 하는 한 순간의 희로애락의 대가는 그들에게 돌아간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경기장 밖의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소비자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다.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무당은 아무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김성재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