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신문고시 개정인가
2009년 10월 05일(월) 00:00 가가
지난 9월30일 한국ABC협회(Audit Bureau of Circulations:신문·잡지·웹사이트 등 매체량 공사기구) 이사회는 신문부수공사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했다. 유료부수는 구독료 정가를 원칙으로 하되, 할인 부수의 경우는 구독료 정가의 50% 이상을 수금할 경우 유료부수로 인정한다는 게다. 쉽게 말해 구독료 50%만 받아도 유료부수로 셈한다는 뜻이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신문 한 부 가격만 내고 두 부를 구독할 수 있다. 이른바 반값 신문 시대가 열렸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가 하늘을 모르고 오르는데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
그러면 왜 이것을 문제 삼을까? 우리는 겉으로 보면 문제가 없고 어쩌면 좋다고 생각한 일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게 이런 경우다.
신문고시라는 게 있다. 신문사들이 독자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경품을 제공하거나 무가지를 끼워 넣는 등 과당 경쟁이 기승을 부리던 1996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지국 사이에 신문투입을 둘러싼 다툼이 살인으로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신문업계의 과당 경쟁과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하여 신문고시를 시행했다. 신문고시는 그 후 폐지되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 시행되고 있다. 내용은 무가지와 경품 제공을 유료대금의 20%로 하며, 신문구독 사절 후 7일 이상 강제 투입하지 말 것 등이다.
한국ABC협회의 세칙 개정은 신문고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신문고시에 따르면 구독료 정가의 80% 이상을 수금할 경우만 유료부수로 인정한다. 신문고시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 무가지 및 무상의 경품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신문법 10조 2항의 시행령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한국ABC협회는 현행법을 어겼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한국ABC협회의 세칙 개정 소식을 듣고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해서 신문고시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민간자율기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란다.
왜 그럴까? 그동안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신문고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표명해 왔다. 그 논지는 신문사 경영활동에 정부가 광범위하게 간여하는 것은 언론 탄압이라는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현 정부 출범 이후 신문고시 폐지 논의가 정부차원에서 터져 나왔다. 작년 4월 당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현 국세청장)은 업무보고에서 소관 법령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한다면서 신문고시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미디어법 중 신문법 개정안 원안에는 신문고시의 모법에 해당하는 10조 폐지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난 6월 23일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시 신문고시 철폐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중소신문과 지방일간지 시민단체들은 고시 폐지는 조·중·동 불법경품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뜻이자 마음 놓고 신문시장을 유린하고 독식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라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결국 공정위는 8월 23일 신문고시를 3년 연장하여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ABC협회가 세칙을 개정했고, 문광부는 신문고시를 고쳐 ABC협회의 위법을 정당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결국 조·중·동이 원해서 현 정부가 들어주려 했으나 중소신문과 지방일간지 시민단체들의 반대 때문에 못했던 것을 민간자율기구가 먼저 고쳤으니 정부가 뒤 따라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가 겉으로 드러난 사태를 살핀 것이라면 속으로 들어가 경제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 달 구독료만 오천 원으로 두 부를 주는 세트 메뉴인 조선일보·스포츠조선, 중앙일보·일간스포츠, 동아일보·스포츠동아를 택하겠는가, 아니면 한 부만 배달해 주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혹은 지방 신문을 구독하겠는가? 눈 감고도 알 일이다. 한국ABC협회의 결정을 가장 반기는 게 조·중·동이다. 그러면 왜 신문 값이 반 토막나는데 조·중·동은 좋아할까?
신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신문사 수입 중 구독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30% 미만이다. 70% 이상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신문시장의 광고요금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 신문광고 요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기형적인 신문광고요금(외국의 일급지와 비교할 경우 미국보다 4.1배, 일본보다 2.4배)은 신문 판매의 정상화에 매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구독료를 땡 처리한다 해도 유가 부수를 두 배 인정받을 경우 광고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더욱 현재 신문시장은 조·중·동이
종합일간지와 특수지, 지방일간지를 합친 전체의 50%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거기에 반값 세일을 한다면 점유율은 얼마나 더 올라갈까? 중소 신문들과 지방일간지들은 직격탄을 맞아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언론자유의 필수 요건인 다양성도 물 건너간다. 세트 메뉴를 즐기는 동안 언론자유가 본질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최병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신문고시라는 게 있다. 신문사들이 독자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경품을 제공하거나 무가지를 끼워 넣는 등 과당 경쟁이 기승을 부리던 1996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지국 사이에 신문투입을 둘러싼 다툼이 살인으로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신문업계의 과당 경쟁과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하여 신문고시를 시행했다. 신문고시는 그 후 폐지되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 시행되고 있다. 내용은 무가지와 경품 제공을 유료대금의 20%로 하며, 신문구독 사절 후 7일 이상 강제 투입하지 말 것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ABC협회가 세칙을 개정했고, 문광부는 신문고시를 고쳐 ABC협회의 위법을 정당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결국 조·중·동이 원해서 현 정부가 들어주려 했으나 중소신문과 지방일간지 시민단체들의 반대 때문에 못했던 것을 민간자율기구가 먼저 고쳤으니 정부가 뒤 따라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가 겉으로 드러난 사태를 살핀 것이라면 속으로 들어가 경제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 달 구독료만 오천 원으로 두 부를 주는 세트 메뉴인 조선일보·스포츠조선, 중앙일보·일간스포츠, 동아일보·스포츠동아를 택하겠는가, 아니면 한 부만 배달해 주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혹은 지방 신문을 구독하겠는가? 눈 감고도 알 일이다. 한국ABC협회의 결정을 가장 반기는 게 조·중·동이다. 그러면 왜 신문 값이 반 토막나는데 조·중·동은 좋아할까?
신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신문사 수입 중 구독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30% 미만이다. 70% 이상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신문시장의 광고요금은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 신문광고 요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기형적인 신문광고요금(외국의 일급지와 비교할 경우 미국보다 4.1배, 일본보다 2.4배)은 신문 판매의 정상화에 매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구독료를 땡 처리한다 해도 유가 부수를 두 배 인정받을 경우 광고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더욱 현재 신문시장은 조·중·동이
종합일간지와 특수지, 지방일간지를 합친 전체의 50%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거기에 반값 세일을 한다면 점유율은 얼마나 더 올라갈까? 중소 신문들과 지방일간지들은 직격탄을 맞아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언론자유의 필수 요건인 다양성도 물 건너간다. 세트 메뉴를 즐기는 동안 언론자유가 본질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최병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