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확산을 막는다며 수억, 수십억 원이 들어간 축제를 억지로 취소하게 만들어놓고서 이제 와서 다시 해도 된다니, 이런 막무가내식 탁상행정은 처음 봅니다.”

지역의 한 단체장은 지난 11일 정부가 ‘연인원 1천명 이상의 축제 및 행사 개최 여부를 지자체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방침을 바꾼다고 발표하자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강행 땐 해당 지자체와 공무원 징계’ 운운하며 행사 취소를 강권하다가 명확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방침을 선회한 것은 신종플루에 대한 정부 대책이 ‘호들갑’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일선 지자체에 막대한 예산 낭비와 신인도 하락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얘기였다.

현재 광주시와 전남도에서는 세계광엑스포와 디자인비엔날레, 김치문화축제, 명량대첩축제 등 20여 개 행사가 개최를 보름 또는 한 달여 남겨두고 취소·연기 또는 축소된 상태다. 이 가운데 광엑스포의 경우 330억 원이 이미 투입되는 등 광주·전남에서만 500억 원 이상의 행사관련 예산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예산외에도 이들 행사가 길게는 1년 전부터 준비돼왔다는 점에서 막대한 행정력의 낭비는 물론, 행사 취소에 따른 지역민들의 실망과 행정에 대한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중순부터 열릴 예정이던 행사를 취소한 광주지역 한 단체장은 사석에서 “신종플루로 지역민의 생명이 위험하다는데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 단체장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정부방침이 바뀌었다고 행사를 다시 진행하는 것도, 촉박한 일정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단체장은 특히 “정부가 ‘지자체 판단으로 행사진행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방침도 결국엔 신종플루확산에 대한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이렇게 신종플루 대책에 혼선을 빚게 되면 결과적인 부담은 지자체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광주시와 일선 구청, 전남도와 일선 시·군에서는 취소 또는 연기해놓은 축제 및 행사를 재추진하는 방안을 서둘러 검토하고 있으나 애초 일정에 맞추기에는 시간이 워낙 촉박한데다, 축제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행사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특히 행사를 재추진하더라도 만에 하나, 행사에 참석한 관람객 중 한 명이라도 신종플루에 감염될 경우 지자체로서는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도 행사 재추진을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시민의 건강과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며칠 만에 대책이 바뀔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 ‘행사 전면 취소’라는 칼을 꺼내들어, 일선 지자체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정부의 대응은 ‘안일한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행기 정치부 차장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