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청춘들 자신만의 ‘올리브 나무’에 기대 올곧게 ‘생존’했으면”
2024년 05월 06일(월) 11:15
김소영 ‘올리브’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지역독립영화 쇼케이스 선정
여성주의, 비정규직 문제 등 다뤄...오롯이 자립하는 청춘 그려 호평

김소영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에 입문하기 전, 미대생 친구에게 영향을 받아 촬영했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당시 캐논60d 카메라를 들고 광주전남 방방곡곡을 누비며 공모전에 도전했다고 한다.

“영화 ‘올리브’는 육아휴직으로 ‘대체되는 자’와 ‘대체하는 자’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죠. 여성주의적 작품이라는 데서 궤를 함께하지만, 젊은 여성들의 동시대적 문제로 조금 방향성을 틀었어요. 서사는 제 경험에서 기인합니다. 한번은 전기설비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계약직라 회사 안에 저의 고정석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자리가 생겼는데 구석진 모퉁이였죠. 그땐 서러웠지만, 그저 웃고 또 웃었어요. 그 쓴 웃음이 단단한 뿌리를 내려 굳건한 ‘올리브’ 나무가 됐네요.”

지난 2일 광주 첨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영(여·32) 감독. 청록빛 셔츠도 감람색 핸드폰도 온통 그녀의 영화 제목을 닮은 ‘올리브’ 빛깔이다. 지난해 광주영화학교(지혜학교)에서 김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단편영화 ‘올리브’는 최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역독립영화 쇼케이스작으로 선정돼 특별상영 섹션에 올랐다. 멀티플렉스 영화와 자극적인 ‘매운맛’ 영화가 범람하는 시대에서도 “누군가는 이런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보아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울림을 남긴다.

그러면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옆에 나의 시놉시스가 내걸리니 감회가 깊다”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많은 관객에게 ‘홀로서기’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이 의미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영화 제목이 열매 ‘올리브(olive)’가 아니라 모두 살아간다는 뜻의 ‘올 리브(All-Live)’인 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 감독은 비정규직 자리를 대체하는 선주와 은하가 모두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제목에 투영했다고 덧붙였다.

광주여성영화제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한 것 외에도, 그가 여성주의 영화에 천착해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단단했던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처음 봤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광주에서 취업하던 때의 비화도 들을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서울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음에도 당시 광주 빵집에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에 ‘상고 출신’이라고 썼다는 것. 그로부터 ‘엄마가 60살이 되기 전에’(2018)에서 모성의 지극함을, ‘할머니와 감나무’(2020)에서는 중년 여성의 서사를 다뤄 왔다. 김 감독이 살아온 이력이 곧 영화가 된 셈이다.

지난해 선보였던 단편 ‘치얼스’에서는 남성(성)에도 주목했다. 남성을 단순히 도구적으로 활용하거나 이분적 성관념 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로 활용했다. ‘치얼스’에서 아빠 ‘석윤’이 딸 ‘인주’의 옷을 개어주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자상한 면모로 부각된 것은 그런 연유다.

“여성주의 영화이지만 늘 아빠(남성)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싶었어요.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중년 남성들의 뒷모습 같은 거요. 아버지가 얼마 전 퇴직을 하셨는데,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시던 분이 퇴직 후에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컴퓨터 앞에만 앉아 계시더라고요.”

김 감독은 아버지가 “소영아 이제 나 뭐할까, 커피라도 배워볼까”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여성주의 영화감독’의 길을 밟고 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양성 모두에게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영화 ‘올리브’ 스틸컷
김 감독은 다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로 ‘한 여성이 오롯이 자립하는 이야기(단편)’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이야기(장편)’를 구상 중이다. 영화적 상상력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조선대에서 국어국문, 영어, 영상디자인을 전공한 뒤, 미대생 친구들과 어울리며 우연한 기회에 ‘사진’에 입문했다. 브라이언 피터슨의 ‘사진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구입해 독학했고 부모님을 설득해 캐논60d카메라 하나에 18-200렌즈를 장착, 다양한 피사체들을 찍었다. 영화적 몽상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눈이 개안된 계기였다.

지금의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물었다. 김 감독은 2012년 새벽에 아버지를 깨워 목포항으로 달려갔다. 오징어잡이 배를 찍기 위해서였다. “해양사진 공모전에 출품해야 한다”는 부탁을 들어준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영화 ‘올리브’ 속 선주와 은하는 현실에서 모두 살아남기(All-live)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 밀어내면 누군가 밀려나는, 이 세계에서 아름다운 ‘올리브 나무’가 어떻게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싶었다. 김 감독은 “영화처럼 명확한 답을 낼 수는 없지만, 더 나은 현실을 위해 관객들이 함께 고민해 줄 것이다”며 “‘그럼에도’, ‘오롯이’ 동시대 청춘들이 저마다의 올리브 나무에 기대어가며, 올곧게 존재하고 살아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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