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힌 사회 보단 말랑한 사회를
2009년 09월 14일(월) 00:00 가가
“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시간. 여기 3명의 후보가 있다. A후보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어울리고, 두 명의 정부(情婦)를 두었다. 줄담배를 피우고, 하루에 8∼10잔의 마티니를 마신다. B후보는 학창시절 골고루 낙제 점수를 받았고, 정오까지 늦잠을 잔다. 대학 시절 아편에 손을 댄 적이 있으며 밤마다 위스키 4분의 1병을 마신다. C후보는 학창시절 우등생이었고,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다. 채식가이며 담배도 안 피우고 가끔 맥주를 마신다. 불륜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고, 취미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다.
자! 이들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 마음속으로 결정했다면 후보의 이름을 확인해보자. A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이고, B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며, C는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이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덕목은 사생활이 아니라 올바른 리더십과 가치관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비즈니스 유머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지만, 만약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리더로서의 자질과 사생활을 연계시키지 않은 서구 사회였기에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었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여 사생활 관리를 리더들의 기본적인 품성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나랏일을 할 자격이 없다고 평가받지 않았을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2명의 스타가 퇴출당하였다. 프로야구 선수 정수근과 신세대 그룹 2PM의 재범이 그 비운의 스타들이다. 정수근 선수는 음주 폭력으로 무기한 실격당했다가 그라운드에 복귀하자마자 다시 음주 소동에 연루돼 구단에서 영구 퇴출명령을 받았다.
재미교포였던 재범은 철없던 연습생 시절, 미국의 네트워킹 사이트를 통해 친구들에게 ‘한국인이 싫다, 내가 랩을 엉망으로 해도 잘한다고 한다, 멍청이 같다’고 썼던 것이 몇 년 만에 알려져 그룹에서 탈퇴하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일반인의 동경을 받는 공인은 사생활도 주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좀 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요구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음주로 인한 사고 전력이 있는 선수가 또다시 음주로 구단의 명예에 누를 끼쳤을 때 징계가 내려지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주를 이유로 야구를 못하도록 퇴출시키는 것은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철없는 아이돌이 한국인이 싫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저런 못된 것”하며 야단치고 안티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저주를 퍼부으며 한국 땅을 떠나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 각 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사생활 문제로 공인을 퇴출시킬 만큼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도덕적인가. 그렇다면, 개개인이 혈연, 지연, 학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정 때문일까. 정이 있는 민족이라 자긍심을 가지면서도 왜 기부문화는 척박한 것일까. 우리의 정은 왜 자신의 연줄에는 약해지면서도 남에게는 냉정해지는 것일까.
혹시 우리 마음속의 잣대가 이중적인 것은 아닐까. 부자가 축재한 데는 뭔가 비리가 있을 거라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는 비판하면서 나의 부동산 투기는 재테크라 생각하며, 명문대 출신을 우대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내 자식만큼은 명문대학에 들어가 주기를 바란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짓밟히고 차별받던 역사에 분개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약소국 출신 외국인을 차별한다. 마치 우리 안에 또 다른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정태춘의 노랫말처럼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듯’이 말이다.
옛말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 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매섭게 하라는 가르침인데 어쩐지 우리 사회는 반대로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고, 우리나라를 사랑하지만, 우리 사회가 잡힌 각을 둥글게 펴서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을이다. 사색의 계절이다. 독서의 계절이다. 무엇보다 결실의 계절이다. 들판의 벼가 겸손하게 익어가고, 여름 날 흘렸던 땀의 가치가 결실을 맺게 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지나온 길에 대한 반추와 사색의 시간을 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독서와 사색은 각 잡힌 사고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둥글게 차오르는 저 달처럼, 혹은 가을 햇살 속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김필식 동신대학교 이사장
지도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덕목은 사생활이 아니라 올바른 리더십과 가치관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비즈니스 유머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지만, 만약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리더로서의 자질과 사생활을 연계시키지 않은 서구 사회였기에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었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여 사생활 관리를 리더들의 기본적인 품성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나랏일을 할 자격이 없다고 평가받지 않았을까.
일반인의 동경을 받는 공인은 사생활도 주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좀 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요구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음주로 인한 사고 전력이 있는 선수가 또다시 음주로 구단의 명예에 누를 끼쳤을 때 징계가 내려지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주를 이유로 야구를 못하도록 퇴출시키는 것은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철없는 아이돌이 한국인이 싫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저런 못된 것”하며 야단치고 안티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저주를 퍼부으며 한국 땅을 떠나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 각 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사생활 문제로 공인을 퇴출시킬 만큼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도덕적인가. 그렇다면, 개개인이 혈연, 지연, 학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정 때문일까. 정이 있는 민족이라 자긍심을 가지면서도 왜 기부문화는 척박한 것일까. 우리의 정은 왜 자신의 연줄에는 약해지면서도 남에게는 냉정해지는 것일까.
혹시 우리 마음속의 잣대가 이중적인 것은 아닐까. 부자가 축재한 데는 뭔가 비리가 있을 거라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는 비판하면서 나의 부동산 투기는 재테크라 생각하며, 명문대 출신을 우대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내 자식만큼은 명문대학에 들어가 주기를 바란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짓밟히고 차별받던 역사에 분개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약소국 출신 외국인을 차별한다. 마치 우리 안에 또 다른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정태춘의 노랫말처럼 ‘강물 속으로 또 강물이 흐르듯’이 말이다.
옛말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 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매섭게 하라는 가르침인데 어쩐지 우리 사회는 반대로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고, 우리나라를 사랑하지만, 우리 사회가 잡힌 각을 둥글게 펴서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을이다. 사색의 계절이다. 독서의 계절이다. 무엇보다 결실의 계절이다. 들판의 벼가 겸손하게 익어가고, 여름 날 흘렸던 땀의 가치가 결실을 맺게 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지나온 길에 대한 반추와 사색의 시간을 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독서와 사색은 각 잡힌 사고를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둥글게 차오르는 저 달처럼, 혹은 가을 햇살 속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김필식 동신대학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