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과 군인정신
2009년 07월 13일(월) 00:00 가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이지만,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의 신라군 사령관은 김유신이고, 당군 사령관은 소정방이다.
두 군대는 서기 660년 7월 10일에 백제의 남쪽에서 합류하여 도성인 사비성을 공파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이 거느리는 결사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진군을 못하다가 장군 흠순(欽純)의 아들 반굴(盤屈)과 좌장군 품일(品日)의 아들 관창(官昌)의 분전 전사에 격동된 장병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진격함으로써 겨우 백제군을 격퇴하고 당나라 군대와 합류할 수 있게 되지만, 약속된 날을 넘기게 된다.
김유신이 도착하자 소정방은 기일에 늦은 것을 문제 삼아 신라군의 독군(督軍) 김문영(金文潁)을 군문에서 목 베려고 했다. 이에 맞서 김유신은 군중들에게 “대장군(소정방)은 황산의 전투를 보지도 않고서 기일 늦은 것을 죄 삼으려 하는데, 우리는 죄 없이 욕을 당할 수 없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일전을 겨룬 후에 백제를 격파하겠다.”고 선언하고서, 마침내 도끼를 곧추세워 잡고 군문에 버티고 서 있는데 노기가 뻗쳐 머리털이 솟고 허리에 찬 보검을 막 뽑을 듯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소정방의 우장(右將) 동보량(董寶亮)이 소정방의 발을 밟으며 “신라군이 장차 변고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라고 일깨워 주었다. 이에 소정방도 할 수 없이 김문영의 죄를 풀어 주고, 신라군과 함께 진격하여 백제의 도성을 포위했다.(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무열왕 7년 조)
이처럼 신라와 당이 연합군을 편성해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는 역사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양군의 사령관 사이에 긴박한 기 싸움이 있었다. 소정방은 김유신과 신라군의 의기를 꺾어 신라군을 손아귀에 넣고자 기일 늦은 것을 구실로 삼았다. 김유신도 이를 간파하고 도끼를 곧추세워 잡고(杖鉞) 분기탱천하는 모습으로 군문에 버티고 서 오히려 당군과 결연히 일전을 겨루겠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도끼를 잡은 것은 스스로 병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자신의 부하를 치죄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소정방은 김유신·김인문·김양도 3인에게 백제의 땅을 식읍으로 나누어 주겠다고 했으나 김유신은 이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소정방은 식읍을 미끼로 회유하려 했으나 김유신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소정방은 곧 신라까지 침공하려는 음모에 착수했다. 이 음모는 바다를 건너오기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소정방의 음모를 간파한 무열왕과 신하들은 결연히 대비 태세를 갖추어갔다. 이를 확인한 소정방은 신라 침공을 포기하고 의자왕 및 신료 93인과 졸병 2만 명을 포로로 잡아 돌아갔다. 소정방이 포로를 바치자 당나라 황제가 “왜 신라까지 정벌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소정방은 “신라는 그 군주가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래 사람의 윗사람 섬김은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소국이라도 도모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삼국사기’ 권42, 김유신전중)
당이 백제를 침공한 것은 전적으로 백제를 멸망시켜 고구려의 배후를 확보하자는 것이었지만, 이왕 대군을 보낸 김에 할 수만 있다면 신라까지 점령한다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 당시 신라는 언제든지 접수할 수도 있는 가벼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 조정이 이 같은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의 단호한 태도와 처신은 소정방으로 하여금 신라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국가임을 인식하게 하였고, 그래서 소정방은 원래의 계획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처신과 자세는 천사백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아도 참으로 당당하고 훌륭하다.
최근 퇴역한 고위 장성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전시작전권 반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위풍당당한 장군들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미군의 주둔이 불가피하고 그래서 전시에 작전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단이 현실적으로 타당할지 몰라도 그런 주장은 정치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대신 군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국가사회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은 것은 미군이 아니라 국군이고, 당신들은 국군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김택민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두 군대는 서기 660년 7월 10일에 백제의 남쪽에서 합류하여 도성인 사비성을 공파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이 거느리는 결사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진군을 못하다가 장군 흠순(欽純)의 아들 반굴(盤屈)과 좌장군 품일(品日)의 아들 관창(官昌)의 분전 전사에 격동된 장병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진격함으로써 겨우 백제군을 격퇴하고 당나라 군대와 합류할 수 있게 되지만, 약속된 날을 넘기게 된다.
소정방은 곧 신라까지 침공하려는 음모에 착수했다. 이 음모는 바다를 건너오기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소정방의 음모를 간파한 무열왕과 신하들은 결연히 대비 태세를 갖추어갔다. 이를 확인한 소정방은 신라 침공을 포기하고 의자왕 및 신료 93인과 졸병 2만 명을 포로로 잡아 돌아갔다. 소정방이 포로를 바치자 당나라 황제가 “왜 신라까지 정벌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소정방은 “신라는 그 군주가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래 사람의 윗사람 섬김은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소국이라도 도모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삼국사기’ 권42, 김유신전중)
당이 백제를 침공한 것은 전적으로 백제를 멸망시켜 고구려의 배후를 확보하자는 것이었지만, 이왕 대군을 보낸 김에 할 수만 있다면 신라까지 점령한다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던 것 같다. 당시 신라는 언제든지 접수할 수도 있는 가벼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 조정이 이 같은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김유신의 단호한 태도와 처신은 소정방으로 하여금 신라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국가임을 인식하게 하였고, 그래서 소정방은 원래의 계획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처신과 자세는 천사백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아도 참으로 당당하고 훌륭하다.
최근 퇴역한 고위 장성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전시작전권 반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위풍당당한 장군들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미군의 주둔이 불가피하고 그래서 전시에 작전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단이 현실적으로 타당할지 몰라도 그런 주장은 정치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대신 군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들로부터 국가사회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은 것은 미군이 아니라 국군이고, 당신들은 국군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김택민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