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필자는 2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최고의 전시행사인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와 매년 개최되고 있는 스위스의 바젤 아트페어를 관람하고 돌아왔다.

두 행사는 세계첨단미술의 최신동향과 흐름을 비엔날레라는 학술적 형태와 아트페어라는 미술시장의 성격으로 구분 짓게 하면서도 동시에 유럽 내 두 도시 간의 지리적 근접성과 연계성, 관광 상품성, 그리고 행사 조직위 간의 긴밀한 공조체제에 의해 전 세계미술관계자들은 물론 일반인, 그리고 6월의 유럽 관광객들에게 필수 답사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두 ‘명품’ 도시의 명품 행사들이 빚어내고 있는 상호 시너지의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이 두 나라, 두 도시의 파워풀한 랑데부가 세계인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필자의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작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몰아닥쳐 전 세계가 경제대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후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미술관에서도 예정됐던 전시 취소 및 연기 사태가 속출했고, 세계 미술시장도 꽁꽁 얼어붙게 된 상황이어서 올해의 베니스와 바젤 행사는 더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베니스 노후화론’자들에게는 내심 이번 행사가 최근의 전 지구적 경제 불황의 여파에 의한 최악의 이벤트로 전락해 자신들의 왜곡된 믿음이 사실로 둔갑, 증명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쯤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해의 두 행사는 그러한 우려를 기획자, 조직위원회의 탁월한 능력과 실력으로 불식시키고, 세계인이 다시 한번 두 도시의 저력을 실감하게 한 채 대성공작으로 순항중이다. 이것이 역사와 전통, 생산품의 질로 인정받아 부동의 위치와 신분을 획득한 소위 명품의 위력이다.

마침 필자가 소속되어있는 스위스 문화재단의 갈라 디너파티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되어 그 자리에 초대된 세계미술계의 주요 인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이번 행사의 성공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참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명품도시인 밀라노에 들러 올해 개최될 전시협의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이동했다.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된 두오모 성당을 보유한 도시이자 프라다, 구치, 베르사체 등 말 그대로 ‘명품 브랜드’ 들이 즐비한 패션의 도시 밀라노를 출발하여 전 세계 여행객들의 허브인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 기내에서 우리의 도시들이 베니스, 바젤, 밀라노, 프랑크푸르트와 교차되었다. 그리고 독일 비행기는 지구 반대편을 날아 필자가 태어나고 성장한 한국 땅에 필자를 내려 주고 떠났다.

이미 수백 번 왕복한 거리요, 도시들이요, 공항들이지만 이번에 다시 내린 인천공항과, 공항에서 사무실로 이동하는 차량에서 새삼스럽게 필자의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문구가 있었다. ‘아시아의 허브 인천공항’, ‘아시안 하이웨이(언젠가부터 경부고속도로가 슬그머니 이렇게 바뀌어 있다)’, 그리고 필자의 거주지 용인의 초입부에 걸려 있는 ‘세계최고, 선진도시 용인’이 그 문구들이다. 우리 자신은 차치하고 라도, 과연 세계인 중 몇 사람이 이 ‘낯 뜨거운’ 문구들에 동의하고 공감할 것인가라는 자문이 가슴을 옥죄어오는 자괴감의 핵심인 것이다.

세상에는 세계인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가치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팩트’(fact)라 부른다. 광주라는 도시가 공허한 정치적 구호의 남발이나, 행사 관람객동원의 쇼비니즘적 숫자놀음이 성공의 등식이라는 ‘억지로 하이웨이’의 자가 최면의 수준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계 속의 ‘명품’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바로 이 ‘팩트’라는 부동의 위성궤도에 진입하여 세계인이 찾고, 세계인들에게 인정되고, 공감을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필자를 비롯한 한국인, 그리고 광주시민에겐 지리, 정치, 문화, 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태생적 한계’라는 것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다. 우리는 이 부인할 수 없는 또 다른 팩트부터 인정하고 우리만의 ‘결단’과 ‘시술’ 그리고 ‘의식’의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세계성이라는 ‘대기권 밖’의 궤도에 진입하는 위성으로서의 명품도시 광주를 전 세계인의 머리 위로 회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원일 스위스 BSI 재단 상임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