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죽음을 기억하자
2009년 06월 07일(일) 23:59 가가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말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더 갖기 위해 집착하고, 더 크게 성공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죽음이 눈앞에 닥친다면? 감히 장담하건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최근,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두 개의 사건을 대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이 그것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죽음은 예기치 않은 순간으로 다가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 죽느냐가 그 사람의 생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축소판이 되기도 하고, 죽음으로써 생애를 완성하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정의로움과 명예를 소중히 지키며 살아왔던 고인은 명예가 불가항력적으로 마구 훼손되던 시기에 죽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켜냈다. 그의 명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던 국민들은 몇 시간씩이고 기다렸다 조문하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했다. 우리는 왜 울었는가. 그토록 길었던 조문행렬,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린 이유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들이 제각기 그럴듯한 답을 내놓았지만 어떠한 답도 심금을 울리지 못했다. 그의 죽음이 곧 그의 생애인 것을, 눈물의 원인을 어찌 한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고인의 말대로 그것은 어쩌면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 했던가. 죽어야 사는 남자. 그는 일생을 두고, 자신의 이익을 버린 채 ‘죽어야만 사는 운명’에 기꺼이 투신해 왔다. 스스로 바보의 길을 걸었다. ‘바보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가장 만만하게 비판받으면서 사실은 국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정치인으로 살아났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던 그의 유언에는 생의 끈을 초연히 놓아버린 자의 쓸쓸함이 묻어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까지 불사하며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인생의 가치가 느껴진다. 생의 가치를 지켜준 죽음에 국민들은 깊이 애도하고, 감동했으며, 먼길을 걸어와 꽃을 바쳤다.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는 것에 대해 무조건 반사로 거부하며 터부시했던 우리 사회의 가치관도 이제 서서히 변화의 물결 앞에 선 듯하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인공호흡기 등에 의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자연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허용한 것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환자의 생명권보다 상위(上位)에 놓여졌다.
물론 존엄사의 남용을 막기 위해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 환자의 사전 의사표시와 종교관 등을 고려해 진정으로 치료 중단 의사가 있다고 추정될 때로 국한하고 있지만, 환자 개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제시된데 주목하게 된다.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 개인이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미리 밝혀놓아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저 옛날 로마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시내를 행진하던 개선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치게 했다 한다. “겸손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속뜻이 있는데, 승리감에 취해 쿠데타를 모의했던 개선장군들이 더러 죽임을 당했던 일과 관련이 있다.
근래 들어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제대로 된 삶을 살라는 의미로 쓰인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 몸이 아니던가. 죽음에 대처하는 개인의 아름다운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정리하다 보면 지금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보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부터 하면 된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우울한 화두가 아니다.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게, 즐겁게 죽음을 기억하자.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김필식 동신대학교 이사장
대문호 톨스토이가 남긴 말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더 갖기 위해 집착하고, 더 크게 성공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죽음이 눈앞에 닥친다면? 감히 장담하건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최근,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두 개의 사건을 대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이 그것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죽음은 예기치 않은 순간으로 다가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 죽느냐가 그 사람의 생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축소판이 되기도 하고, 죽음으로써 생애를 완성하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정의로움과 명예를 소중히 지키며 살아왔던 고인은 명예가 불가항력적으로 마구 훼손되던 시기에 죽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켜냈다. 그의 명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던 국민들은 몇 시간씩이고 기다렸다 조문하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했다. 우리는 왜 울었는가. 그토록 길었던 조문행렬,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린 이유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들이 제각기 그럴듯한 답을 내놓았지만 어떠한 답도 심금을 울리지 못했다. 그의 죽음이 곧 그의 생애인 것을, 눈물의 원인을 어찌 한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고인의 말대로 그것은 어쩌면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 했던가. 죽어야 사는 남자. 그는 일생을 두고, 자신의 이익을 버린 채 ‘죽어야만 사는 운명’에 기꺼이 투신해 왔다. 스스로 바보의 길을 걸었다. ‘바보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가장 만만하게 비판받으면서 사실은 국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정치인으로 살아났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던 그의 유언에는 생의 끈을 초연히 놓아버린 자의 쓸쓸함이 묻어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까지 불사하며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인생의 가치가 느껴진다. 생의 가치를 지켜준 죽음에 국민들은 깊이 애도하고, 감동했으며, 먼길을 걸어와 꽃을 바쳤다.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는 것에 대해 무조건 반사로 거부하며 터부시했던 우리 사회의 가치관도 이제 서서히 변화의 물결 앞에 선 듯하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인공호흡기 등에 의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자연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허용한 것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환자의 생명권보다 상위(上位)에 놓여졌다.
물론 존엄사의 남용을 막기 위해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 환자의 사전 의사표시와 종교관 등을 고려해 진정으로 치료 중단 의사가 있다고 추정될 때로 국한하고 있지만, 환자 개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제시된데 주목하게 된다.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 개인이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미리 밝혀놓아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저 옛날 로마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시내를 행진하던 개선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치게 했다 한다. “겸손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속뜻이 있는데, 승리감에 취해 쿠데타를 모의했던 개선장군들이 더러 죽임을 당했던 일과 관련이 있다.
근래 들어서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제대로 된 삶을 살라는 의미로 쓰인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 몸이 아니던가. 죽음에 대처하는 개인의 아름다운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정리하다 보면 지금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보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부터 하면 된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우울한 화두가 아니다.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게, 즐겁게 죽음을 기억하자.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김필식 동신대학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