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체코 프라하에서 개막된 제 4회 프라하 비엔날레에 광주출신 작가 강운과 함께 다녀왔다. 이번 비엔날레 행사에 공동큐레이터로 임명된 필자는 한국작가 10명의 출품작 30여점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필자를 비롯한 한국미술관계자들에게는 개막식에 참여한 국제미술계의 주요 인사들과의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과거의 역사적 공간을 전시장화한 칼린홀에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주목을 받았고, 특별히 광주가 배출한 강운 작가를 국내 전시행사가 아닌 국제비엔날레에 최초로 출품시킴으로써 작가 본인 못지 않은 흥분과 기대, 그리고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작품을 행사장 벽에 거는 설치단계에서부터 행사를 공동주최한 이탈리아 플래시 아트에서 파견된 설치팀원들이 강운의 감성적 작품들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유럽의 주요도시인 프라하에서 국제적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객관적 평가를 받는 광주작가에 대한 자긍심에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 왔다.
물론 다른 9명의 한국작가들의 작품들이 선전하는 모습도 기쁜 일 이었지만, 필자와 10여 년을 교류해오며 함께 예술적 성장을 이루어온 화순출신의 한 작가를 세계무대의 한복판에 세우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의 ‘수줍은’ 연기를 지켜보는 필자의 심정을 작가들이 얼마나 헤아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자가 한국작가와 광주작가를 지속적으로 세계무대에 진출시키고 있는 이 지난한 여정은 단순한 애국심의 발로도 아니요, 기획자로서의 위상이 여기까지 도달하기까지의 험난했던 세계무대에서의 개인적 고통과 출혈에 대한 어떤 반사이익이나 보상에 대한 기대도 아니며, 한국 내에서의 그 어떤 미술 정치적 목적도 더더욱 아니다.
오직 하나의 마음, 필자가 광주비엔날레의 전시팀장이라는 소중한 직책을 통해 국제적 실무경험을 학습했고, 광주작가들과 함께 국제미술계에서 성장해 왔다는 고마움에 대한 작은 보답과 신의, 그리고 그들과 세계무대에서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 싶은 소망이 전부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까. 강운의 출품작품 ‘유어공’은 프라하의 5월 행사에 어울리는 봄기운이 완연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이 작품은 한지를 겹겹이 밀착시켜 종이라는 물료를 넘어선 시간의 켜들이 축적된 공간 위에 꽃잎이 흐드러지게 펼쳐진 감성적 공간을 연출한 화면이다.
설치를 막 끝냈을 무렵 전시조직자인 플래쉬 아트 공동발행인 헬레나 콘토바가 필자에게 다가왔다. 강운의 작품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메이징”을 연발하며 필자의 등을 두드려 주고 지나갔다. 문득 그녀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프라하 출신 체코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20세기 영화의 제목과 같은 ‘프하의 봄’이 ‘광주의 봄’과 조우하는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개막 후 사흘째가 되는 날 필자는 전시장에 남아 행정적 마무리를 하고 있었고 강운 일행은 중세와 르네상스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체코의 전통마을 체스끼 끄루물로프를 향해 떠났다. 체코출신 작곡가 드보르작과 쌍벽을 이루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의 영감의 원천이 된 몰다우강의 상류지역에 위치한 전통마을 유적지를 여행하러 출발한 강 작가 일행을 배웅하며 필자는 또다시 남다른 개인적 감회에 젖었다.
10여 년 전 필자가 성곡미술관에 근무할 당시 화순 동복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기억, 그리고 그를 곧바로 성곡미술관의 ‘내일의 작가’ 개인전 프로젝트로 초대하여 서울의 도시인들에게 ‘화순의 밤하늘’을 선보였던 기억, 그 이후 그가 광주비엔날레를 시점으로 홍콩 등지의 아시아 무대에 진출하기까지 등 그동안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프라하로 떠나기 며칠 전 광주 도심으로 옮긴 그의 작업실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가 수줍게 웃으며 던진 말을 기억해 보았다. “전 아직 까지 촌놈인데요, 뭘”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강선생, 세계적 촌놈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프라하의 봄과 광주의 봄이 만난 곳에서 이제 세계적 촌놈이 되기 시작한 그의 뒷모습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프라하의 5월이다.
/이원일 스위스 BSI 재단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