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행복해지는 ‘가정의 달’로
2009년 05월 03일(일) 23:59 가가
부재(不在)로써 존재(存在)를 증명하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 늘 있던 자리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나면 부재가 주는 공허감으로 인해 그 가치를 절박하게 깨닫게 되는 것들 말이다. 부모와 가정도 그런 존재다. 현명한 사람은 ‘있을 때 잘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지만 대개는 ‘다음에 잘 해야지’ 하고 미루다 번번이 후회를 하곤 한다.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와 부모님, 그리고 스승님. 너무나 소중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계절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감사드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버려지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늘어나기에, 우리 집 아이와 부모 챙기는 일이 즐겁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희망 속에 일찍부터 성공을 위해 내달릴 때,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외면과 사회의 냉대 속에서 어른처럼 생계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힘든 세월을 건너고 있다. 노인 다섯 명 중 두 명은 외톨이로 살고 있다 한다.
스승의 날 괜한 오해 받을까 두려워 차라리 휴교하겠다는 학교가 여전히 존재하고, 촌지 근절을 위해 불시에 선생님들 가방 속까지 검문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행여 누(累)가 될세라 스승님 찾아뵙기도 주저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가족 안에서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허술해지는 느낌이랄까. 멀리 있는 행운과 성공을 잡으려다 가까이 있던 행복을 날려버린 것처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낭패감을 지울 수 없다.
여행을 갈 때면 나는 가방 속에 책을 몇 권 넣어가, 객지의 낯선 불빛아래 독서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여행길에 가져간 책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였는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소설은 서울 지하철역에서 엄마가 실종된 데서 출발한다. 엄마한테 많은 것을 떠맡기고 의지하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자기 생에서 엄마를 밀어내고 있던 자식들은, 당황한다. 엄마가 갈 만한 곳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엄마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엄마로서 그녀가 해냈던 역할과 일상 뿐,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소설 속 자식들과 공범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의 절반도 돌려드리지 못하면서 살기 때문에, 버려진 남의 부모를 긍휼히 여겨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너나 잘하라”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너나 잘하라는 말은, 개인의 실천을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울타리를 허물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실천을 주눅 들게 만드는 저해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얼마 전 내가 몸담은 대학에서 사회봉사단 활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1년간의 활동 소감을 묶어 자그마한 소식지를 냈다. 참여 후기를 읽어보니 열이면 열 모두 “도움 드리러 갔다가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며 즐거워했다.
세답족백(洗踏足白)이라 했던가. 남의 빨래를 해주니 내 발이 희어진다고, 남을 돕고자 한 일이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베풀고도 오히려 많은 것을 받았다며 고마워할 줄 아는 젊은이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본 듯하여 무척 흐뭇했다.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속에서 많은 가정이 지금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맨몸으로 한파를 견뎌야 할 것인가. 자기 자식을 챙기고, 자기 부모를 섬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회의 정의란, 남의 자식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내가 피해자가 아닐지라도 남이 피해를 입으면 함께 마음 아파 하고, 외롭게 사는 남의 부모 손에 내 손 내밀어 잡아주는 사람이 많아질 때, 바로 서는 것이 아닐까.
하여, 나도 “너나 잘하라”는 소리 들을까봐 위축되는 마음을 떨치고 자그마한 실천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낮은 목소리, 작은 노래들이 모여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대하며 즐겁게 5월을 시작한다.
김필식〈동신대학교 이사장〉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와 부모님, 그리고 스승님. 너무나 소중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계절이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감사드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버려지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늘어나기에, 우리 집 아이와 부모 챙기는 일이 즐겁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희망 속에 일찍부터 성공을 위해 내달릴 때,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외면과 사회의 냉대 속에서 어른처럼 생계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힘든 세월을 건너고 있다. 노인 다섯 명 중 두 명은 외톨이로 살고 있다 한다.
스승의 날 괜한 오해 받을까 두려워 차라리 휴교하겠다는 학교가 여전히 존재하고, 촌지 근절을 위해 불시에 선생님들 가방 속까지 검문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행여 누(累)가 될세라 스승님 찾아뵙기도 주저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가족 안에서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허술해지는 느낌이랄까. 멀리 있는 행운과 성공을 잡으려다 가까이 있던 행복을 날려버린 것처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낭패감을 지울 수 없다.
여행을 갈 때면 나는 가방 속에 책을 몇 권 넣어가, 객지의 낯선 불빛아래 독서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 여행길에 가져간 책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였는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소설은 서울 지하철역에서 엄마가 실종된 데서 출발한다. 엄마한테 많은 것을 떠맡기고 의지하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자기 생에서 엄마를 밀어내고 있던 자식들은, 당황한다. 엄마가 갈 만한 곳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엄마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엄마로서 그녀가 해냈던 역할과 일상 뿐,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소설 속 자식들과 공범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의 절반도 돌려드리지 못하면서 살기 때문에, 버려진 남의 부모를 긍휼히 여겨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너나 잘하라”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너나 잘하라는 말은, 개인의 실천을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울타리를 허물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실천을 주눅 들게 만드는 저해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얼마 전 내가 몸담은 대학에서 사회봉사단 활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1년간의 활동 소감을 묶어 자그마한 소식지를 냈다. 참여 후기를 읽어보니 열이면 열 모두 “도움 드리러 갔다가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며 즐거워했다.
세답족백(洗踏足白)이라 했던가. 남의 빨래를 해주니 내 발이 희어진다고, 남을 돕고자 한 일이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베풀고도 오히려 많은 것을 받았다며 고마워할 줄 아는 젊은이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본 듯하여 무척 흐뭇했다.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속에서 많은 가정이 지금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맨몸으로 한파를 견뎌야 할 것인가. 자기 자식을 챙기고, 자기 부모를 섬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회의 정의란, 남의 자식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내가 피해자가 아닐지라도 남이 피해를 입으면 함께 마음 아파 하고, 외롭게 사는 남의 부모 손에 내 손 내밀어 잡아주는 사람이 많아질 때, 바로 서는 것이 아닐까.
하여, 나도 “너나 잘하라”는 소리 들을까봐 위축되는 마음을 떨치고 자그마한 실천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낮은 목소리, 작은 노래들이 모여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대하며 즐겁게 5월을 시작한다.
김필식〈동신대학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