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을 맨 처음 외쳤던 이는 옛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였다. 오랜 내전으로 지쳐있던 시절,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공화정이 무너지고 1인 통치가 시작됐지만 당시 로마인들은 그저 평화가 찾아왔다는데 안도했다. 그리고 호라티우스는 ‘송가’에 이렇게 썼다. “오늘을 즐겨라. 내일을 믿지 말고.”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교사 키팅이 외친다. “자 귀를 기울여봐. 들리나? 카르페. 들리나? 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호라티우스와 교사 키팅이 ‘카르페 디엠’을 외쳤던 상황은 다르지만, 현재의 가치를 일깨운다는 목적은 같고, 그 가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해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들려주곤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즐겨라” “가슴에 큰 꿈을 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그 꿈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인데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민망해졌다. 마치 철 지난 유행가 같다고나 할까, 심하게 말하면 철없는 낭만주의자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취업난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채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취업이 대학생들의 지상과제가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이다. 현실은 냉혹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취업 준비에 헌납해야 한다. 많은 대학생들이 입학과 함께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전공 학문 보다는 영어에 무게를 둔다. 대학도, 정부도, 부모도 그런 그들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시대다. 88만원 세대, 졸업을 미루고 취업준비를 하는 모라토리엄족, 취직을 못 해 졸업 후에도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캥거루족 등 서글픈 용어들이 난무한다.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고, 정부의 대학 지원 사업 대상을 선정하는데도 취업률이 중요한 지표가 된지 오래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S세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S는 실습생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스타지에르(Stagiaire)에서 따온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이 회사, 저 회사 인턴사원으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S세대라 부른다는데,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가 지금 그 같은 상황이다. 경기 침체로 신규 채용이 크게 줄었고 그나마 정규직보다는 인턴,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잡 쉐어링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에서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인턴제도를 대대적으로 시행한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인턴제나 아르바이트를 늘려 일시적으로 청년실업을 해소하기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정책이 집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찌 보면 이런 때일수록, 일반 국민과 소비자들의 힘으로 성장해온 기업들이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사회적인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록 고통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그러나 꿈이 있기에 아름다운 젊은 시절,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은 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리 젊은 학생들이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과 모험을 해보게 하는 일, 상상력과 창의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는 일,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 그것은 사실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다.
하루빨리 경제가 안정되어, 우리 젊은이들이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인생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카르페 디엠!’
김필식〈동신대학교 이사장〉